‘명저읽기’를 옹호한다

2023-06-02     허재영(교육대학원) 교수
허재영(교육대학원)

나는 대학에 다닐 때부터 책 사는 것을 좋아했다. 수업 시간에 담당 교수님이 소개하는 책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것으로 알았고, 여러 종류의 책을 사서 비교해 보지 않으면 답답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마치 권모술수를 옹호하는 책이라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겉말에 속지 않듯이, 시대와 사회를 읽어내야 그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연구소에서 진행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일기’ 특강에서 나온 명사의 한 마디다. 『군주론』을 ‘군주의 자질’에 관해 논의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키아벨리가 처음 책을 쓸 때의 제목이 ‘군주정에 대하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특강은 책 읽기와 관련해 또 한 번의 충격을 가져다줬다.


 2013년 나는 어떤 출판사로부터 교양인을 위한 읽기와 쓰기에 대한 책 한 권을 집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촌스럽게도 그때 제목으로 받은 것이 ‘국어의 정석’이었는데, 국어에 어떻게 정석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 다시 발행한 책명이 『나도 잘 쓰고 싶다』였다. 이 책에서 나는 용감하게도 ‘글을 바르게 읽어야 세상이 보인다’는 말을 썼다. 거기에서 나는 그동안 느꼈던 한국인의 ‘읽기에 대한 편견’을 소개하고, 내가 알고 있는 ‘읽기 전략’을 소개하고자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책 너무 많이 읽지 마라’와 ‘읽는 방법을 배우자’이다. 한국 사람들은 막연히 ‘책은 많이 읽으면 좋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2019년 우리 대학은 교육과정 개편을 맞이해 ‘명저읽기’라는 교과를 개발했다. 흔히 시대와 사회를 초월해 가치를 인정받는 책을 ‘고전’이라고 하는데, 명저는 고전의 범위를 넘어서 가치를 인정받는 글을 의미한다. 혹자는 ‘읽기가 대학의 교과목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가질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리버럴 아트 컬리지를 비롯해 상당수의 대학이 읽기 관련 교과를 보유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우리 학교의 ‘명저’는 오히려 때늦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자유교양대학의 교양기초연구소를 비롯해, ‘명저읽기’를 담당한 수많은 교수님의 노력 덕분에 우리 학교의 지적 풍토, 연구 풍토가 달라졌음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2023년 지금, 우리 대학은 내년부터 시행할 교육과정 개편을 앞두고 있다. 이럴 때마다 항상 교양 교육이 뜨거운 감자처럼 여겨진 것으로 보이는데, ‘명저읽기’도 여러 가지 뒷말이 있는 모양이다. 현재 ‘명저읽기’는 특정 교과가 전담하지 않는다. 그래서 힘을 모아 노력한다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교양 교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명저’를 옹호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