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없는 고집은 애처롭다
지난 31일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식 발표 하루 전 국방부가 실시한 브리핑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홍 장군이 독립군을 무장 해제시킨 자유시 참변에 개입된 걸 ‘문서’로 확인했다고 하다가 학계에서조차 사실 확인된 게 없다며 기자들이 반문하자 실수라며 입을 닦았다.
더불어 입장문에선 홍 장군이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빨치산으로 활동했다며 그가 공산주의 이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홍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서 몰아내려는 것은 당위성 있는 행위인지 그저 전 정권의 기조를 지우기 위한 논란 제조인지 의문이 든다.
합당한 대의명분이 있다면 당위성은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대의명분이 없으면 명분을 만들기 위해 당위성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스스로 만들어 낸 당위성이 마땅히 옳은 근거가 될 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문제인 것은 허황된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는 자들이다. 이달 1일 국방부 산하의 국방홍보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인생 풀스토리’ 영상은 현재 비공개 처리됐다. 분명 4년 전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던 영상이다.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어서 비공개 처리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국가의 역사관이 바뀐다. 대통령은 국가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현재의 시각으로만 재단한다면 모두가 감옥에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 속 인물을 다각적으로 봤을 때 객관적인 사실의 변경이 필요할 정도라면 바로잡는 게 맞다. 그러나 사실 확인 없이 그저 얼버무리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정권에 따라 바뀐다면 그건 국민을 상대로 한 명분 없는 아집이다.
송주연 편집장 zooyeon@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