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와 턱시도는 규범인가 로망인가
16. 개인과 집단 사이에 위치한 결혼식
스물넷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부모님 지인이 아닌 내 지인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어색해하는 순간도 잠시, 그 해에만 네 번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이후에도 해마다 두 번 이상의 청첩장을 받는다. 서른 무렵에 접어드니 결혼은 주변의 중요한 화두가 돼가고 있었다. 결혼식은 보통 기성의 문화와 시선이 강하게 작용하는 장소다. 신부는 대기실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았고, 춤이라도 추면 어른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반면 결혼의 주체들은 취향과 개성을 예식에 녹이고 싶어 했다. 비합리적이거나 구시대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결혼식은 수용과 타협이 섞인 결과물이었다.
결혼식은 각자 조금씩 달랐다.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각자의 이상과 관념에 따라 관례를 조금씩 바꾸고 조정해 갔다. 결혼식의 가장 핵심적인 관례는 신부와 신랑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이다. 특히 결혼식의 풍경에서 드레스와 턱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일상복에서는 여성복이 남성복과 잔뜩 뒤섞였음에도 결혼식에서만큼은 드레스가 고정적으로 등장한다. 이때 드레스는 누군가 잡아주고 정리해 주지 않으면 혼자 뒤도 돌아보지 못하는 크기다. 이 눈부신 드레스는 허례와 낭만이 교차하는 결혼식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모두 똑같이 행하는 일인 동시에 두 사람의 만남을 축하받는 아름다운 순간. 드레스도, 결혼식도,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동시에 낭만화되었다. 눈부신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아름답지만, 옆에서 결혼하는 또 다른 신부와 무엇이 다른가? 드레스 또는 턱시도. 둘로 나누었기에 선택지가 좁은 셈이다.
작년 11월, 미국 『보그(Vogue)』에서는 성 중립적인 결혼식에 대해 다뤘다. 남성의 턱시도에 코르셋이 덧입혀지거나, 남성용 드레스, 여성용 수트 등 경계를 흐리는 디자인이 여럿 소개되었다. 세상에는 동성결혼과 같이 이분법적 성(性) 체계에서 벗어난 다양한 결혼이 있다. 『보그』에서 소개한 수트와 드레스는 이 수많은 여집합을 포용한다. 우리는 소중한 순간에서 무엇이든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을 입든 축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결혼식은 축복의 공간인가, 의무의 공간인가? 결혼식의 고루함은 다양한 개인을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가장 개인적인 방식이 가장 아름다운 예식이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