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정치’ 징비록 필요하다

2024-04-09     단대신문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중국 베이징 한국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일갈했다. 이 회장이 대한민국 정치를 3류도 아닌 4류라고 하자 정치권은 “감히 기업인 따위가”라며 발끈했다. 후진적 정치를 자성하기는커녕 화를 낸 정치인의 낯 두꺼움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바뀐 게 없어 보인다. 

 

정치인의 증오 정치, 기득권 정치, 포퓰리즘, 막말 행태는 대한민국 정치가 더 추락했다는 혹평이 결코 과하지 않다. 이번 ‘4·10 총선’을 전후한 갖가지 행태만 봐도 그렇다. ‘국민의 삶’보다는 ‘당리당략’이 횡횡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새 국회의 최우선 3대 과제로 국민은 민생, 저출생, 경제 재생을 꼽았다. 고물가와 경제난, 2030 세대의 좌절을 투영한 2024년 봄의 거울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전투구(泥田鬪狗)만 했다. 예산 확보도 안 된 ‘묻지마’ 선심 공약을 남발했고, 도덕성이 숭숭 뚫린 후보자를 내세웠고, 거친 혀는 더 현란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구태 정치를 다시 목도한 국민은 답답하다. 감히 정치인 따위가 국민에게라고 분노하면서도 투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소중한 주권을 행사해 3류, 4류 정치 심판에 나섰다.

 

총선 후에 대한민국 정치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기성세대에 짓눌린 ‘청년 정치’의 재정립이 시급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청년층을 대변할 인물은 턱없이 적었다. 전국 총선 지역구 후보 696명 중 2030은 38명(5.5%)에 불과했다. 이는 4년 전 6.1%보다 퇴행한 수치다. 여성 후보자 비율도 14.1%로 4년 전 19.1%보다 5%포인트 줄었다. 우리 정치가 갈수록 기성세대와 남성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 선진국은 청년 정치가 활발하다. 현재 47살인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8년 전 39세에 대통령이 됐다. 올 1월엔 1989년생인 가브리엘 이탈이 35세로 최연소 프랑스 총리가 됐다. 뉴질랜드·오스트리아·벨기에도 30대 총리를 배출했다. 청년 정치인 육성시스템과 개방적인 정치 문화, 청년층의 새바람과 사회 분위기가 하모니를 이룬 결과다.

 

반면 우리 정치권은 2030 등용을 구색 갖추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탈(脫)이념과 탈 정치, 실용과 미래 비전을 갖춘 젊은이의 담대한 도전을 배척하거나 길들이기도 한다. 정치를 잘못 배운 일부 2030은 ‘청년 꼰대 짓’을 했다. 이 또한 후진 정치의 한계다. 4·10 총선 이후 대한민국 정치는 참회의 징비록을 써야 한다. 3류, 4류 정치를 척결하지 못 하면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만들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