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뒤처짐’을 새롭게 사유하기

17. 서구는 우리보다 앞서 있는가

2024-04-09     김희량 패션칼럼니스트

뉴욕 패션 공과대학교 교수 유니야 가와무라(Yuniya Kawamura)는 패션을 제도적인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패션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기반에 따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1980년대부터 주목받은 레이 카와쿠보나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같은 일본 디자이너들은 프랑스 파리의 제도화된 패션 시스템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에 명성을 얻었다는 것이다. 서구의 문화적 지위가 패션을 패션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최초의

 

서구는 늘 앞섰다. 서구의 패션 시스템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대조하면 한참 뒤처진 우리나라의 위치가 보인다. 세계 최초의 오뜨 꾸뛰르 하우스는 1858년 프랑스에서 나타났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철종이 즉위한 지 9년째로 아직 근대화가 시작되지도 않은 때였다. 코코 샤넬이나 크리스티앙 디올 등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1920-40년대에 우리나라는 식민 지배에 있었고, 1960-70년대 히피와 펑크 등 여러 하위문화가 나타나며 패션 시스템이 다채로운 변화를 겪는 동안 우리나라는 그제야 민주화를 이루느라 피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패션 ‘시스템’은 없었다.

 

우린 늘 뒤처져 있었고, 그래서 서구의 방식을 수용할 뿐이었다. 그들의 방식은 모든 기준이 되었다.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방식으로 패션을 즐기며, 브랜드를 만들고, 우리만의 패션 시스템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여러 디자이너를 해외의 패션 위크에 올리며, 우리도 그들의 위치와 지위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래야 하는가? 우리가 뒤처졌던 것은 부끄러운 일인가? 아니, 뒤처진 것이 맞긴 한가? 서구에 비해 시점이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세한 것이 되는가? 우린 꼭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는가? 서구가 미리 도착한 곳은 우리의 목적지가 돼야 하는가?

 

패션 바깥으로 논의를 확장해 보자. 아마 우리가 서구 국가를 뒤따라가고자 하는 이유는 부와 힘 때문일 것이다. 부강한 나라가 돼 잘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서구의 부강한 국가에서 사는 사람은 국가가 부강하기에 개인도 모두 부와 힘을 갖추었나? 나라가 부강해지면 누가 수혜를 받는가? 만약 그 수혜가 불평등하다면, 나라의 부강함은 추구할 만한 가치인가? 서구의 방식을 발전된 것으로,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시선에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들과 같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