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사자’ 살린 경험… 한국판 ‘생츄어리’ 만들고 싶다”-김정호
20살 고령 ‘갈비사자’ 치료 SNS, 언론에 화제 몰고 와 24년째 야생동물 치료 보람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추억을 선물하는 동물원, 동물들에게는 어떤 공간일까. 동물원은 동물 보호와 상업적 수단의 역할을 동반한다. 동물원에 대한 긍정과 부정 여론이 팽배한 가운데, 사람이 아닌 동물을 위한 동물원을 꿈꾸는 수의사가 있다. 청주동물원에서 24년째 야생동물을 치료하는 김정호 수의사(49)를 만났다.
-일반 동물병원의 수의사가 아닌 동물원 수의사가 된 계기는.
“야생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을 졸업할 당시에는 야생동물 수의사라는 직업이 없었다. 동물원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있고 그중에는 야생동물도 있기에 동물원 수의사가 되기로 했다.”
-작년에 화제가 됐던 사자 ‘바람이’의 근황은.
“야생동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갈비가 다 보일 정도로 말라 ‘갈비사자’로 불리던 ‘바람이’는 사람 나이로 100세가 넘는 고령이기 때문에 청주동물원에 적응하기까지 더욱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7월 5일에 와서 지금까지 적응 기간이었다고 보면 된다. 현재는 건강을 회복해 다른 사자들과 합사도 가능해진 상태다.”
-구출된 사육 곰들이 청주동물원에 들어오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2018년에 시민단체와 환경부, 청주동물원이 웅담 농장의 사육 곰들을 구출했다. 당시 우리나라 사육 곰 농장에서 최초로 살아 나온 곰들이었다. 원래 웅담 채취 목적으로 길러지는 곰들은 죽어야만 농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곰들이 청주동물원에서 지내게 된 것이 환경부 국비를 지원받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곰뿐만 아니라 동물원의 다른 동물들의 생활, 진료 환경까지 개선될 수 있었다.”
-2019년에 남극에서 진행한 펭귄 연구는 어땠는지.
“남극 펭귄 연구팀에 학교 후배가 있어 임상수의사로 추천받아 펭귄 연구에 참여하게 됐다. 펭귄은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는데, 알을 품는 2주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 ‘어떻게 펭귄은 2주 동안 잠을 안 자고 버틸 수 있는가?’를 알아내는 게 연구 목적이었다. 먼저 데려온 펭귄의 움직임, 활동량, 잠수 깊이 등을 측정하고 바다로 내보낸다. 알 품기를 교대하러 돌아올 때 데이터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결론적으로 4초에 1만 번 이상 잠드는 ‘마이크로슬립’으로 수면을 보충한다는 연구 결과를 냈고 해당 연구는 미국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에 실리기도 했다.”
-이상적인 동물원의 모습은.
”적어도 방문자들이 동물원을 보고 야생동물과 공존의 필요성을 배워갈 수 있는 동물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동물들이 동물원에 있느냐도 중요하다. 기존에는 아프리카의 홍학 같은 동물들이 꽁꽁 묶여 3박 4일 이상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홍학이 죽고 살아남은 홍학만이 전시되는 건데, 그런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겠는가? 그저 구경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동물원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장애 동물들을 보호하고 재활을 통해 야생으로 복귀시키는 목적을 가진 동물원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한국형 생츄어리란 무엇인가.
“생츄어리(Sanctuary)란 보호구역, 성역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다. 외국 생츄어리는 동물권 단체들에 의해 운영된다. 야생 곳곳에 구조된 농장동물을 위한 보호구역을 만들어 운영한다. 한국 동물원의 지배구조는 독특하다. 80%의 한국 동물원은 개인 동물원이고 그중 대부분이 실내 동물원이다. 한국에서 생츄어리를 만든다고 하면 공영 동물원을 생츄어리화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완전한 생츄어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생츄어리와 기존 동물원의 중간쯤 되겠지만 방향성은 생츄어리였으면 좋겠다.”
-다큐멘터리 영화 <생츄어리>에서 다룬 ‘사육 곰 생츄어리 설립’ 진행 현황은.
“현재 환경부에서 구례군과 서천군에 사육 곰 생츄어리를 설립 중이고 구례군은 올해 연말쯤이면 설립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열 마리 정도의 곰을 키우는 웅담 채취 농장을 구입해서 그 농장을 민간 곰 생츄어리로 조성하고자 하는 계획도 있는데, 국가 주도로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야생동물 수의사로서만 느낄 수 있는 고충은.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다 보니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치료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주로 그렇다. 개나 고양이 같은 소동물들은 분과가 있는데 그에 반해 야생동물들은 연구와 자료가 부족해 깊이 있는 치료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진료 중에 나온 새로운 데이터들을 논문화하는 등 진료 과정 자체가 연구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동물원에 수의사가 늘어 예전에 혼자 하던 일을 세 명이 함께 하니 나아진 것 같다.”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구조가 필요한 동물을 알게 되면 계속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측은지심인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무리한 치료를 하게 되기도 한다. 각각의 동물들이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되는 것이 수의사 생활의 원동력이다.”
-어떤 수의사로 남고 싶은가.
“보호받아야 할 야생동물들이 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 자립할 수 있는 야생동물이라면 훈련을 통해 자연에 복귀시켜야 한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치료하고 싶다.”
-단대신문 독자들에게 한마디.
“사람들은 동물원에서 희귀하고 특별한 동물을 보기를 기대한다. 근데 그런 동물들은 대부분 외국 동물이다. 외국 동물들은 우리 산야의 보호색을 띠지 않기 때문에 화려해 보일 수밖에 없다. 동물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토종 동물들에는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부엉이와 올빼미의 차이를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토종 동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동물을 관람한다는 이유로 굶겨가며 먹이 주기를 체험하고, 갇혀 있는 동물을 구경하러 간다. 진정 동물을 위한 선택은 무엇인지 재고해 볼 때다. 김정호 수의사는 “동물이 잘 사는 세상에서 인간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동물을 유희의 수단이 아닌 같은 생태계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동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주동물원은 사람을 위한 동물원에서 동물을 위한 보호소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다.
감성으로 다가가서 이성으로 치료, 동물 보호 아이디어는 늘 존재
김정호 수의사는 올해로 24년째 청주동물원에서 동물들을 치료하고 있다. 그는 “초창기에는 동물들에게 과도한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동물들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느끼면 결국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부분마저 흐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물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감정은 김 수의사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이성적인 치료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누구보다 동물을 아끼고 그들을 위한 길을 개척해 나가면서도 때로는 그들을 위해 애정과 연민을 배제하려 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할 기회가 또 생긴다면 어떤 주제의 다큐를 제작하고 싶냐는 질문에 김정호 수의사는 “자연 유산 보전의 일환으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관련한 영화를 제작해 보고 싶다. 우리나라 산지는 대부분 개인 소유인데,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개인 소유 산지를 사들여서 야생동물 서식지로 개척하는 과정을 담고 싶다”고 전했다. 1974년생. 충북대학교 수의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석·박사. 2000년부터 청주동물원 수의사로 근무. 2019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 제작 참여. 2024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생츄어리> 제작 참여.
한지수 기자 jisoohan5122@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