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1위 오명, 대한민국이 우울하다

10만명당 25.2명 비극 맞아 올 5월까지 전년비 10% 증가 예산 효율적으로 투입하고 전문가와 연계시스템 구축 강화를

2024-09-24     이수빈·김도연·안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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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자살한 사람은 6375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1% 증가했다. 2022년 기준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5.2명으로 자살률 2위인 리투아니아(18.5명)보다 약 6.7명이 많고, OECD 국가 평균인 10.7명보다 2배 이상 많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 우울·불안 증가 등이 자살률 증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모방 자살’도 자살 사망률 증가의 원인이 된다. 복지부의 ‘2023 자살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자살 보도와 미디어 속 자살 장면이 자살 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각각 52%, 55%로 나타났다. 

 

박소은(대학생활상담센터 위기상담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사회·문화·경제적 요인이 얽혀 복합적”이라며 ▶과도한 경쟁사회 구조로 인해 학업·취업·경제적 성공에 대한 심리적 압박 가중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 확산 ▶체면 중시 사회와 실패에 대한 낙인 ▶자살 예방 체계나 지원시스템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유족에게 따뜻한 ‘마음’ 필요
자살로 사망한 고인의 유가족은 복잡·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유가족은 일반인보다 자살 위험성이 8.3배 이상 높다. 매년 약 8만 명의 자살 유족이 생기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자살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예방은 자살률 감소에 필수적이다. 

 

자살 유족은 사회경제문화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유족지원팀 이지현 팀장은 “유족들은 고인이 주 소득원이었던 경우나 고인이 부채를 남기고 갔을 경우 그의 부재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갖게 된다”며 “자살 유족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이 스스로가 자살 유족임을 밝히고 서비스를 받는 데 소극적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자살예방법 12조 2항에 따르면 경찰·소방관서의 장은 자살 시도자 또는 자살자가 발생한 경우 그들의 정보를 관할 구역 내 자살예방업무 수행 기관에 제공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유족이나 주변인이 직접 서비스를 찾아 요청하는 구조였으나 2022년부터 법이 개정돼 동의받지 않아도 정보가 3일 이내 기관으로 넘어가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에 이 팀장은 “서비스를 몰라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는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이 회복 후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유족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는 활동가를 양성 중이다. 자살 유족 동료지원 활동가 심소영(45)씨는 “자살 유족들에 대한 편견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우울과 자살에 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살 고위험군과 자살 유족을 향해 따뜻한 위로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사회적 인식 개선과 더불어 유족들에 대한 지원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자살 예방의 사이클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예방과 사후 관리는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고위험군 체계적 관리 중요
‘자살 고위험군’은 자살의 위험성이 높은 집단이나 개인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들은 우울증과 정신 질환, 자살 시도 경험이 있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직업으로는 의료인, 경찰·소방 공무원, 장례지도사 등이 있으며 업무 특성상 높은 스트레스와 감정적 부담을 겪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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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과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진료사업단의 지난 3~5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방 공무원 5만2802명 중 43.9%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 증상 ▶수면장애 ▶문제성 음주 등 심리 질환 가운데 적어도 1개 이상에 대해 관리나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보정119안전센터 소방관 A씨는 “교대 근무를 통해 매일 다른 팀이 투입되고 3교대로 운영돼 야간 근무도 잦아 팀원들이 정신적으로 고됨을 느낀다”고 밝혔다.

 

경찰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찰연구학회의 2023년 ‘경찰공무원의 자살 현황 및 예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찰 공무원이 한 해 평균 21명으로 나타났다. 학회는 높은 직무 위험성과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문제 등이 경찰 자살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공무원들의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은 충분할까. 용인서부경찰서 문정영 행정관은 “2022년부터 경찰관의 정신건강 위험척도를 측정하는 경찰 맞춤형 정신건강척도(MHAPI 검사)가 도입됐다”며 “검사 결과에 따라 고위험군은 상담 대상으로 의무 지정하고, 주의군은 마음동행센터 상담사의 유선 안내를 통해 상담을 권유한다”고 밝혔다. 

 

장사시설에서 근무하는 장례지도사 또한 자살 위험군이 되기 쉽다. 11년 차 장례지도사 최승철(34)씨는 “장례지도사의 정신건강에 대한 지원이나 복지는 따로 없다”며 “동료들은 본인이 힘든지도 모르고, 티를 내지도 않다가 다음 날에 고인이 된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이정선 교수는 “장사시설 종사자들은 유족을 애도하는 상담 교육은 받지만, 본인을 위한 심리 지원은 없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의료인, 장사시설 종사자 등 2차 인원의 마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상담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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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예산 계속 확충해야
우리나라는 여전히 충분한 자살 예방 체계나 지원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이다. 자살 예방 예산은 2020년 236억원에서 연평균 12%씩 증가해 올해는 549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자살률 감소에는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역마다 상담 체계를 갖고 민간단체나 상담 시스템과 연결해 자살률을 줄이고 있는 일본 2021년도 예산의 7.3% 수준에 불과하다. 임명호(심리치료) 교수는 “최근 상담을 확대하는 등의 적극적인 정책이 시도되는 것은 맞지만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전문가와의 연계 시스템이 여전히 부진하다”고 밝혔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위해서는 “지자체별로 전문가와 연계된 네트워크 시스템이 확립되어 연령별로 다양한 접근들이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WHO 자살 예방 국가전략의 핵심 요소와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 국가 전략을 비교했을 때, 임 교수는 “시민들의 의식 개선을 위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자살 수단의 접근 제한에서 예전에 아파트 옥상 문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려 한 적이 있지만,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일이 있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특히 청년층에 대한 교육을 강조했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성인들은 직장에서 교육이 이루어지지만, 청년들은 일종의 낀 세대로서 교육의 사각지대다”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에 대해 서민영(특수교육3)씨는 “우리나라는 정신 질환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정신병원에 가거나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왕세현(보건행정1)씨는 “중·고등학생 때 자살 예방 UCC를 주기적으로 봤고 예방 설문조사도 했다”며 “많은 사람이 예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홍보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자살로 6375명이 사망했다. 이 정도면 거의 전쟁 상황과 다름없다. 유족 동료지원 활동가 심씨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부에서도 자살 예방 교육과 자살 유족들에 관해 관심을 쏟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살의 원인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만큼 다양한 부처의 노력이 동시에 일어나 효율적인 예산 지출이 동반돼야 한다. 더불어 자살 예방 교육은 심폐소생술과 같이 전 국민에게 필수적으로 이뤄져 올바른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할 때다. 이처럼 자살 문제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가 관심을 두고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 이 기사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최하고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생명존중 기사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수빈·김도연·안소은 기자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