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 ‘대학 자율’ 담론 절실하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가 혼란하다. 불안한 정국 속에 국민의 삶은 고단하다. 경제는 가라앉고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줄어드는 삼중고에 시달린다. 그렇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차기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한다. 지도자의 국정 방향에 따라 국민의 삶도, 국가의 위상도, 청년층의 미래도, 대학의 경쟁력도 달라질 수 있어서다.
본지는 특히 대선 후보의 교육 철학을 주목한다. 대학의 생명은 자율이다. 정권이나 정치에 상관없이 대학은 늘 진리를 탐구하고, 지성을 발산하고,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인재 양성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대학은 그간 자유롭지 못했다. 정권마다 정책을 바꾸고, 학사에 간섭하고, 재정지원 방식을 변경했다. 교육철학이 탄탄한 대통령이 없었던 탓이다.
미국 대학의 동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조 원의 연구 자금 중단 등 대학 길들이기 조짐을 보이자, 대학은 침묵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이유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 입학 정책과 교수진 채용 정부 감시 권한을 대학 측에 요구했다. 그러자 대학 총장 등 269명은 “정부 간섭이 학문의 자유를 위협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아이비리그(ivy league)를 비롯한 10개 대학 총장과 이사진은 대학 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레드 라인’ 마련에 나섰다. 즉 학문의 독립성 침해가 우려되는 행정부 요구안을 특정 대학이 수용하면, 다른 대학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선례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이 대목에서 국내 대학은 집단지성의 위축 원인을 곱씹어봐야 한다. 교육부의 각종 행·재정 간섭, 입시 통제, 등록금 정책 등 여러 현안에 대해 대학이 침묵했던 것이 사실이다.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는 전형적인 ‘에듀 폴리틱스(edu-politics)’를 묵인했다. 물론 대학을 통제하며 알량한 권력을 즐기는 교육부에 맞서기 어려운 현실적인 고충은 있다. 그렇다고 침묵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대학은 국가의 핵심 동력이다. 우리 사회 전체의 비판과 성찰, 공공성과 상상력을 재생산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지적 기반의 총합체다. 그런 만큼 이제는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교육의 본질을 사회와 대선 후보에게 질문하고, 동시에 대안을 제시하는 지성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대학은 시대를 실험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지성의 거점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를 비롯한 총장 협의기구는 물론 대학별로 더 적극적으로 자율을 주창해야 한다. 대선 정국에 ‘대학 자율’ 담론이 절실하다. 미국 대학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에 결연하듯 말이다. 지성의 침묵은 금이 아니다. 비겁함이다. 집단지성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