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잃다, 젊음을 잇다… 현대화 옷 입는 전통시장
Prologue
과거 전통시장은 신선한 채소와 활기찬 흥정, 넘치는 손님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열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명절이면 물밀듯 붐비던 전통시장. 이제는 북적이던 발길이 대형마트로, 물건을 고르던 손은 온라인 주문 버튼으로 옮겨갔다. 전통시장은 고요해졌을까.
N년째 경기 불황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 전통시장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봅니다.” 기자가 전통시장에서 만난 한 소상공인이 했던 말이다. 한때 지역 경제와 문화를 이끄는 ‘소비의 장’ 역할을 했던 전통시장. 그러나 ‘전통시장’이라는 이름이 풍기는 옛 냄새에서 알 수 있듯, 활발했던 전통시장 모습도 어느덧 과거의 유산이 됐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세대 소비 성향에 전통시장은 더 이상 옛것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는 소비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진 것이다. `2025년 소상공인시장경기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 전통시장 체감 경기지수(BSI)는 49.3을 기록했다. BSI가 100 이하면 경기 악화를 의미하는 이 지표에서, 49.3이라는 수치는 전통시장의 ‘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2011년 BSI 조사가 시작된 이래 전통시장의 체감경기지수는 한 번도 기준치(100)를 넘지 못했으며, 하락세 역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2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간한 ‘2023년 전통시장·상점가 점포경영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전통시장 내 점포 수는 총 22만 6995개로, 2022년(23만 2206개)보다 무려 5211개가 줄었다. 이렇듯 내리막길에 선 이들의 현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전통시장에 방문해 봤다.
기자는 서울 관악구 낙성대역 인근 50년 이상 전통의 ‘인헌시장’에 방문했다. 시장 초입에 도착하자 큼지막한 시장 간판과 그 위의 낙성대를 상징하는 강감찬 장군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기자를 놀라게 한 건, 예상과 달리 마냥 적지만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시장을 왕래하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기자는 27년째 시장에서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이무진(64)씨에게 인헌시장의 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씨는 “시장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노령화됐습니다. 시장 방문객도, 장사하는 사람도 젊은 세대의 유입이 부족한 상황입니다”라고 토로했다. 이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과는 다른 풍경이 보였다. 시장에서 젊은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청년들의 발걸음이 끊긴 시장의 모습이었다. 시장에서 만난 가정주부 정미경(38)씨는 “평소 식자재를 사기 위해 집과 가까운 인헌시장을 자주 방문하는 편이지만, 청년 세대들은 확실히 시장에 잘 오지 않는 것 같다. 전통시장이 어려운 이유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현세대의 소비패턴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음이 끊긴 시장
청년층은 왜 전통시장을 찾지 않게 됐을까. 이 씨는 “과거에는 시장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지금은 과거에 비하면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며 “젊은이들은 배달 서비스로 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으니,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는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소상공인들이 이를 실질적으로 체감하는지는 미지수다. 관악구는 ‘2025년 전통시장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지역 전통시장에 총 21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 씨는 “지원사업으로 거리나 점포가 외관적으로 깔끔해지겠지만, 상인들이 효과를 실질적으로 체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0년째 분식 장사를 하는 최연자(가명)씨도 “정부 지원 사업이 시장 내 모든 업종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에, 모든 소상공인이 사업의 효과를 느끼긴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청년 시장객들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전통시장도 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망원시장’은 여전히 왁자지껄 생기를 띠고 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니 붐비는 시장 객들로 인해 한 곳에 서 있지 못할 정도였다. 시장 곳곳에 먹음직스러운 간식거리와 가지런히 포장된 음식이 객들을 반겼고, 시장은 20대부터 장·노년층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고 있었다.
SNS 홍보로 고객 유혹
그렇다면 망원시장은 어떻게 ‘MZ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대표적으로 SNS를 통한 활발한 홍보와 2030 세대 소비층을 겨냥한 이색적인 활동의 확대가 있다. 군산에 거주하는 장지해(28)씨는 서울을 방문한 김에 SNS를 통해 본 망원시장을 방문했다. 장 씨는 “요즘 SNS에 전통시장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도 찾는 것 같아 오게 됐다”며 “직접 만드는 음식,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점이 전통시장의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지난 4월 ‘2025 전통시장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통시장이 젊은이들도 찾는 힙한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에 56.5%가 동의했다. 20대 연령층의 경우 ‘SNS 등을 통해 관련 콘텐츠나 후기를 접했다’는 응답이 41%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이는 청년층 사이에서 현대화한 전통시장이 방문 코스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소외된 전통시장도 있지만, 현대화된 옷을 입고 당당히 청년 고객을 맞이하는 시장도 많아지고 있다.
가족 단위로 시장을 방문한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시장을 찾은 박상진(45)씨는 시장 방문 이유에 대해 “실물로 보는 것과 인터넷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있다. 직접 와서 상품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대형마트는 같은 상품을 두세 군데밖에 안 파는데, 시장은 같은 상품을 여러 곳에서 많이 팔아 가격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전통시장 두 곳과 서울 시내 대형마트, 식자재 마트의 채소 가격을 비교해 보니 차이가 뚜렷했다. 청경채는 시장에서 한 팩에 1000~1500원, 마트에서는 2000~3000원에 판매됐다. 팽이버섯 역시 시장이 500원에서 2500원까지 더 저렴했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채소류는 전통시장이 가격경쟁력을 보였다. 온라인 마켓은 채소마다 상이했다. 예를 들어 쿠팡에서 파프리카 2개 가격은 2000원으로, 시장보다 1000~2000원, 마트보다 3000원가량 저렴했다. 반면 쌈 배추, 당근 등 일부 품목은 전통시장이 가장 저렴했다.
이제는 전통시장 회생에 일회적 상품권 발행보다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망원시장에서 만난 상인 안준호(40)씨는 “상품권 발행할 때만 사람이 몰린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유입을 위해서는 이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시장 정책에 대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일부 전통시장은 배달 앱을 애용하는 청년층을 고려해 배달 서비스를 강화하고, 공연 및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등 전통시장 현대화에 힘쓰고 있다.
Epilogue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말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멈춰있는 것은 곧 후진을 의미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통시장과 청년을 이을 연결고리를 고민해야 한다. 전통시장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송지혜·김준원 기자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