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면발의 계절
12. 라면
‘라면' 두 글자에 위안을 얻는 사람이 많다. 기쁘고 즐거울 때는 물론, 힘들고 슬플 때 특히 더 찾게 된다. 아무리 영양과 정성이 결핍된 가공식품일지라도 한국인에게 라면은 힐링 푸드 그 자체다.
푸드 칼럼니스트이자 요리연구가로서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고 수많은 식재료를 접했다. 그러나 마음이 힘들 때면 언제나 라면부터 찾게 된다. 뜨거운 면발을 후후 불어 먹다 보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얼큰한 국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난 뒤에는 속이 다 시원해진다. 라면을 먹었다고 골치 아픈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속이 푸근해지며 뾰족했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다. 아마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일 것이다.
요즘처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는 뜨거운 라면에 영 손이 안 간다. 시원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생각난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느껴지는 이 허한 기분은 무엇인가. 그 어떤 음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라면의 부재에 온몸이 신호를 보낸다. 궁리 끝에 라면을 시원하게 먹어보기로 한다.
차갑고 칼칼한 냉라면무침을 소개한다. 재료는 ▶메밀면(라면) 160g ▶방울토마토 4개 ▶오이 3분의1개 ▶닭가슴살 60g이다. 소스는 ▶올리고당 2큰술 ▶다진마늘 2큰술 ▶간장 1.5~2큰술 ▶통깨 2큰술 ▶참기름 2큰술 ▶고추기름 2큰술을 잘 섞어 준비한다. 오이를 얇게 채 썰고, 방울토마토는 1cm 크기로 썬다. 닭가슴살은 삶아서 얇게 찢고 메밀면도 삶아서 찬물에 식힌다. 재료 준비가 끝났으면 소스를 넣고 무치면 완성이다. 소스를 한 번에 다 붓기보다 3분의2 정도만 넣어 간을 보며 추가하도록 한다. 이 요리의 포인트는 고추기름이다. 시판용 제품을 넣어도 좋고, 없다면 기름에 고춧가루를 넣고 약한 불에서 우려내 사용해도 좋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메밀면을, 분식파라면 쫄면을 넣어도 잘 어울린다. 부드럽게 퍼지는 잔치국수 면을 넣으면 후루룩 잘 넘어간다. 칼로리가 높아져도 상관없다면 통깨를 듬뿍 뿌려 먹는 것을 추천한다. 통깨의 고소함과 고추기름의 칼칼함이 중독성 있는 조화를 이룬다.
요리연구가로서 라면 요리법을 늘 고민한다. 라면에는 요리연구가의 의욕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까다로운 재료나 어려운 조리 과정 없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최고의 맛을 내는 라면. 이 절대적인 식재료에 조금의 마법을 부리면 얼마나 더 황홀한 결과가 나올지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결국엔 팔팔 끓여먹는 클래식한 조리법을 뛰어넘을 레시피는 없다는 것을 깨닫지만 말이다.
이주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