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디자인은 경계한다, 위험 부담 있어도 ‘실험 정신’ 발휘”-조현열 그래픽 디자이너(시각디자인·04졸)

학창시절 축제 때 추억 “동아리실 건물 바닥에 그림 그려” SNS·AI 디지털 활용 “트렌드 흐름 빠르게 파악해야”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철학·인문학 등 다양하게 공부를”

2025-10-14     배정아 기자

 

조현열

트렌드에 민감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세상을 담아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학창 시절, 남들과 달리 ‘글자’를 습작하던 그는 현재 ‘스튜디오 헤이 조’를 이끄는 아티스트가 됐다. 우리 대학 시각디자인과(현 커뮤니케이션디자인 전공)를 졸업한 타이포 그래픽 디자이너 조현열(50) 그래픽 디자이너를 만났다.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후 타이포 그래픽을 선택한 이유는.

“학창 시절부터 미술 수업에 대한 흥미가 굉장히 컸다. 중고등학교 재학시절 당시 다른 친구들은 인물 습작을 했던 반면, 난 글자를 습작하는 습관이 있었다.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할 때쯤엔 디자이너가 될 것이라는 게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이미지·사진·색채 등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하는데, 나는 타이포 그래픽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하게 됐다.”

 

-재학 당시의 배움이 도움 된 적 있는지.

“과에서 배운 내용보다 동아리, 학교 소모임 활동을 통해 많이 배웠다. 특히 편집 디자인 동아리 ‘타에니(Taeni, 타이포그래픽&에디토리얼)’에서 포스터 제작과 전시 활동에 참여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학부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는.

“학부생일 당시에는 캠퍼스가 한남동에 위치해 있었다. 미대 수업을 듣는 곳이 꼭대기 층이었는데, 거기 올라가면 한강이 보였다. 동기들과 함께 올라가서 시간을 보내던 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또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축제 당시 동아리실이 있던 건물 바닥에 직접 그림을 그렸던 일이다.”

 

-디자인에 대한 철학과 관점의 변화가 궁금하다.

“학부를 졸업한 지 20년이 지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는 항상 미래를 꿈꾸고 도전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고 나이가 걱정돼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학부 시절과 비교해 좋은 점은 완전한 실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이를 통해 생각의 폭과 깊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직업만의 매력은 무엇인지.

“혼자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보니 다른 직업군에 비해 자율성이 높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나에게 외주를 맡겨주는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하다 보면 ▶대기업 ▶미술 ▶음악 ▶영화계 등 다양한 직업군과 협업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작업을 하다 보면 힘들 때도 있지만, 각기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일해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작업물에서 글자에 집중하는 것 같다.

“뚜렷한 계기랄 건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글자를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 다른 친구들은 습작으로 만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는 글자를 습작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런 호기심이 대학 진학 후 글자를 디자인하는 ‘타이포 그래픽’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

 

-작품을 만들 때 중점을 두는 곳은.

“첫 번째는 ‘실험성’이다. 디자인과 예술 분야는 맞닿아 있다. 늘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며 틀에 갇힌 디자인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을 가져가서라도 항상 실험 정신을 가지고 작업하려고 노력한다. 두 번째는 ‘서비스 정신’이다. 의뢰받아 작업하기 때문에, 서비스업의 특성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와의 충분한 소통으로 의중을 파악해 서로 만족할 만한 작업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주로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SNS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쌓아온 내 경험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얻는 것 같다. 디자인은 논리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복잡한 분야라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 꾸준한 공부와 전시·영화·음악 감상 등이 모두 자극이 되고 영감을 준다.”

 

-‘스튜디오 헤이 조’ 의미가 있는가.

“예일대학교 대학원을 다닐 때 외국인들이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 해 부끄러워하곤 했다. 그래서 최대한 발음하기 쉽게 이름의 앞 글자만 따서 ‘조’라고 칭하도록 했다. 이름 이니셜이 ‘HYJ’인데, 발음이 ‘A조’와 비슷해 여기서 ‘헤이 조’라는 이름이 생각나 짓게 됐다. 스튜디오 운영에 큰 욕심은 없고 현행 유지가 목표이다. 30대 때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디자이너 시장 자체가 레드 오션이기 때문에 욕심을 갖는 순간 힘들어진다. 지금은 그저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

 

-AI가 많은 직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AI 기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이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이를 새로운 실험 도구로 사용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디자이너의 경우 트렌드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AI가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예술 속에 담길 수 있는 시대적 아이디어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스스로 ‘디자이너는 사상가도, 정치인도, 사회 활동가도 아닌데 과연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다. 또한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을 담은 작업물을 만들 기회가 적다. 그러나 트렌드의 흐름은 디자이너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 정신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기는 어렵더라도, 간접적으로 트렌드 흐름을 드러내는 디자인을 제작하려고 한다.” 

 

-강연 경험이 많은데, 가르치고 싶은 직업윤리나 철학이 있는지.

“첫 번째는 ‘솔직해라’이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과시적일 때도 있고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아는 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 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번째는 ‘현실적인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나의 강점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봐야 한다. 이런 것들이 결국 작업물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과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약하자면 나 자신을 타자화해 바라봐야 한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학문을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나의 지식과 경험이 디자인에 그대로 발현되기 때문에 철학·인문학 등 다양한 학문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교인 단국대에 대해서는 애정이 깊다. 앞으로 단국대 학생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2024

 그림 실력만으론 도전 불가, 지식과 솔직함이 디자인의 진짜 ‘본질’

 

디자인 분야에 도전하는 대학생들에게 ‘디자인’은 어떤 분야라고 생각하는지 그는 묻는다. 조 디자이너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고 미술에 대한 재능이 있으면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판이라고 말한다.

 

그는 “창작물은 디자이너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만큼 표현된다”며 “자신이 아는 만큼 솔직하게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하고, 반영하고자 하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디자이너는 향후 스튜디오에 함께 출근하는 반려견 조조와 함께 동양 예술의 메카인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소소한 목표를 전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2004년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후 2009년 예일대학교 그래픽디자인 석사학위 취득. 이후 2010년 ‘스튜디오 헤이 조’ 설립해 2015년 4회 타이포잔치, 2020년 21회 전주국제영화제 아이덴티티 디자인 담당. 2025년 제 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미술감독으로 디자인 총괄.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편집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강의 중이다.

 

 

배정아 기자 jeonga1339@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