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커플 인정… 다양성 수용일까, 법적 혼란될까
Prologue
“사실 기쁘다는 감정보다 ‘이제야 가능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랄까요.” 천안캠 퀴어 동아리 ‘디퀴즈’의 부원 A씨는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성을 ‘배우자’로 등록할 수 있게 된 이번 변화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번 변화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동성 커플의 존재가 공식 통계에 등장하게 된 사례로 ‘역사적 결정’이라 평가된다. 40여 개 국가에서 이미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시점임에도, 여전히 성소수자들에 대한 큰 벽이 존재하던 우리나라이기에 이번 변화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에 대해 여러 반응이 엇갈리는 만큼 논쟁거리도 많은 상황이다.
인구조사, 동성 배우자 등록 가능
5년마다 전국 가구 약 20%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인구주택총조사에 올해부터 큰 변화가 생겼다. 성별이 같더라도 ‘배우자(사실혼)’ 또는 ‘비혼 동거(함께 사는 연인 등)’로 가구주와의 관계를 등록할 수 있게 됐다. 가구주와 배우자가 동성일 경우 입력 오류로 처리되던 기존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국가데이터처는 이번 조치를 “총조사 전반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비혼 동거와 동성 커플이 늘어나는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보다 현실에 근거한 정책 수립을 위해 항목을 개편한 것이다. 올해 조사에는 동성 배우자뿐만 아니라 결혼·출산 계획, 가족 돌봄 시간, 가구 내 사용 언어 등 최근의 사회적 흐름을 담은 항목들이 새롭게 포함되기도 했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그동안 국가 통계나 실태 조사에서 성소수자가 배제되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해 왔다. 성소수자 단체 ‘무지개행동’과 ‘모두의 결혼’은 2018년부터 동성 부부 관계 입력 허용을 꾸준히 요구해 왔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22년 성소수자 인권 개선을 위한 조사항목 신설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 조치는 이들의 지속적인 요구가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재학생 B씨는 “아직 법적으로는 동성 결혼이 인정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통계 차원에서 동성 커플이 가시화된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B씨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며 “이번 변화가 직접적으로 제도를 바꾸진 않더라도 사회 인식에는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재학생 C씨는 “사회가 성소수자의 삶을 인정하는 시작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동성을 ‘배우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문항을 개편한 것은 단순한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상징하는 조치다. 인구조사는 복지·주택·교육 등 국가 정책 전반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는 만큼, 이번 변화는 동성 부부의 존재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받아들여진다는 평가도 있다.
‘디퀴즈’의 회장 박정우(공공행정1)씨는 이번 변화에 대해 “국가데이터처가 ‘동성 부부’라는 기입란을 만든 것 자체가 상당히 진보적이고 큰 변화”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동성 커플은 행정 기록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건강보험 등 국가 복지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법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도 미비했다. 박씨는 “비록 아직 법적 제도화로 나아간 건 아니더라도, 존재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위로가 됐다”고 밝혔다.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만들어지는 조사 자료는 정부 산하 여러 기관과 부처에서 활용되며, 사실상 정책의 기반이 된다. 성소수자의 권리 증진을 위한 공익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신필규 활동가는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 장기적인 비전이 부재했다”며 “그로 인해 성소수자는 사회 속에서 굉장히 고통받으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조치가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을 즉각적으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또한 신 활동가는 “국가데이터처가 동성 부부 관계도 조사하겠다고 나선 움직임이 다른 정부 기관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기관들이 관련 정책을 만들고 제도가 바뀌기 시작하면 성소수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의 기본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조항에 따르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은 주로 법률혼을 전제로 한 남녀 간 혼인을 기준으로 해석된다. 때문에 동성 배우자 등록이라는 사회적 변화가 헌법 제36조 제1항과 충돌하는지, 또는 해석상 문제는 없는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고영남 인제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조치에 대해 “법적 효력을 가진 제도 변경이라기보다 사회 현실을 반영한 행정조사”라며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단순히 혼인 상태를 조사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이번 조사는 동성 배우자 등록 여부도 포함해 사회의 변화를 파악하려는 취지다. 헌법 제36조 제1항과의 충돌에 대해서는 이 조치가 법률혼의 요건을 바꾸는 법률개정이 아니라, 현실을 조사하는 통계 절차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 입양 문제 혼란 계속돼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법적 장치가 미비한 상황에서 동성커플을 통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헌법 질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동성혼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법률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관계를 행정 통계에서 배우자로 분류한다면 국가의 혼인제도를 무너뜨리고 가족 개념 자체를 약화할 수 있다. 통계의 목적은 사회 현실을 기술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지, 새로운 사회 규범을 창출하거나 제도 변화를 선도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국리서치 정기조사에 따르면 동성결혼 법제화에 관한 질문에 응답자 55%가 반대(매우, 대체로), 31%가 찬성(매우, 대체로)을 택했다. 동성커플의 자녀 입양 허용에 관한 질문에서는 43%응답자가 허용에 반대를, 32%응답자가 허용에 찬성했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사실혼 커플의 ‘부부 공동입양’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실혼 관계라도 커플 중 한 사람이 ‘단독 입양자’로서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는다면, 일반 입양은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이번 동성 커플의 사실혼 인정으로, 동성 커플도 한 명이 단독 입양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여러 쟁점이 존재한다.
동성혼이 합법화된 국가들 중 다수는 동성 부부의 입양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동성 부부의 입양을 찬성하는 측은 아이의 복지와 발달에 있어 부모의 성별보다는 안정적인 애정이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연구 결과에서도 동성 부모와 양성 부모가 입양한 자녀 간 성장 과정에 차이가 없었다고 발표된 바 있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이나 제도적 공백 속에서 아이가 심리적 불안정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 역시 꾸준히 나오고 있다. 현재 미국 내에서도 동성 커플의 입양은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지만 입양 및 아동보호 시스템의 허점, 동성 커플 입양에 대한 규제 강화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입양 과정에서의 심사 기준과 감독 강화, 철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가족 형태 속에서 모든 아동이 법과 사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지속적으로 논의돼야 할 시점이다.
국가데이터처는 동성 배우자 통계 집계와 관련해 사회적 합의와 법제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반영해, 이번 조사 결과를 내년 공식 통계로 발표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종 공개 여부는 내년 담당 부서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Epilogue
통계는 각종 사회정책의 기초 자료가 되기에, '배우자' 범주가 확장되면 향후 가족 복지정책의 적용 대상도 넓어질 수 있다. 동성 커플이 공식 통계에 포함되면 그 존재가 분명해지고, 향후 관련 법과 제도 논의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아동 보호와 가족 제도는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장치이기에 장기적 검증과 논의 없이 구조를 급격히 바꾸는 데에는 우려가 뒤따른다. 제도 변화가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채은·강민·정세욱 기자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