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북한 상황 알리고 싶다 호소한 탈북민 돕고 싶었다”

이은구·케이시 라티그 비영리 단체 FSI 공동대표 ‘자기표현의 힘’으로 세상과 연결… 탈북민 삶을 바꾸는 비영리 FSI 두만강 건넌 탈북민, 영어로 삶을 쓰다… 영문 책으로 세계와 소통 2030 세대에 전하는 통일의 감각… ‘무관심 속의 관심’을 깨우다

2025-11-11     김민수 기자

누군가에게 영어는 스펙 한 줄을 채우기 위한 경쟁의 도구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희망의 다리다.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들에게 영어가 바로 그런 의미를 지닌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비로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탈북민의 영어교육과 자기표현을 돕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이하 FSI)’. 그 중심에서 지난 12년간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온 이은구·케이시 라티그 공동대표를 만났다.

 

서울시

-FSI에 대해 소개하자면.
(케이시 라티그) “FSI는 한국에 기반을 둔 비영리 단체로, 2013년부터 600여 명의 탈북민들에게 영어교육과 경력 개발을 지원해왔다. 우리는 탈북민의 이야기를 담은 4권의 책을 포함해 총 5권의 책을 출판했고 22회의 북한 영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했다. 우리 팀은 탈북민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자원봉사자들과 직원들로 꾸려져 있다.”

 

-FSI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이은구) “2013년에 한국교육개발원 탈북 청소년 교육지원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북한 출신 교사들을 만났다. 그분들과 ‘NK교사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탈북민들이 외래어나 영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 정착하려면 영어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탈북민과 영어 교사를 매칭하는 자원봉사 형태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케이시 라티그) “탈북민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자유기업원에서 국제 관계 담당 디렉터로 근무할 때였다. 당시 그들로부터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내가 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런데 2012년 초, 30명의 탈북민들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다는 뉴스를 보고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이후 북한에 CD와 DVD를 풍선에 실어 보내는 활동과 관련 행사 조직을 도왔다. 그러던 중 탈북민과의 식사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많은 탈북민이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이은구 대표와 만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바로 영어 교육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점은 FSI 가 탈북민들의 필요와 요청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FSI가 추구하는 ‘자기표현의 힘’이 탈북민들에게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케이시 라티그) “탈북민에게 영어 교육을 지원하면서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첫 번째는 ‘인식’이다. 그들은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세상이 더 많이 알기를 원한다. 두 번째는 ‘옹호’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촉구하고자 했다. 세 번째는 ‘스토리텔링’으로, 북한에서 묵살당하거나 고문당하거나 살해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네 번째는 ‘치유’다. 그들은 북한이나 중국에서의 트라우마를 이야기로써 치유하고자 했다. 마지막은 ‘자신감’이다. 그들은 북한 정권의 통제 아래서는 자신을 개발할 기회가 없었기에, 자신을 찾고 인간으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이은구) “사실 이 다섯 가지 이유가 애초의 목적은 아니었다. 처음엔 단순히 영어 역량 강화에 초점을 뒀다. 그런데 그게 자신감 회복과 자기표현 능력, 치유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탈북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차별적인 시선을 받을 때가 많다. 특히 젊은 계층은 북한 출신인 걸 숨기기 위해 말투도 바꾸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영어를 잘하게 되면 ‘북한에서 왔는데도 영어를 잘한다’는 식으로 달리 평가받는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정착하고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동안 만났던 탈북민 참가자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케이시 라티그) “2011년 홀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던 한송미 작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9년 우리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있었는데, 영어를 배우며 자신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는 북한에서 초등학교를 1년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영문으로 같이 책을 쓰고 출판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지금은 FSI 소속 북한 인권 운동가이자 작가로서 제네바 인권회의 등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연설을 이어가고 있다.”

 

-FSI의 대표 활동 중 하나인 ‘탈북민 영어 말하기 대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이은구) “처음에는 탈북민들의 영어 기본기를 다지는 과정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배운 걸 실제로 써보고 표현해 봐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어 말하기 대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체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상금도 개인적으로 마련했지만, 나중에는 여러 단체에서 후원해 주면서 상금 액수가 늘어났다. 물론 가장 큰 목표는 참가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영어로 표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교육법이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이은구) “1대1 맞춤형 수업이다. 탈북민들이 일반 영어학원을 가면 그룹 수업을 하게 되는데, 다른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그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는 영어 자신감이 떨어지기 쉽다. 하지만 외국인 교사와 1대1로 매칭되면 학생들은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알고 있는 교사에게 마음 편히 질문할 수 있다. 교재도 학생이 원하는 것으로 사용하며, 필요한 경우 스피치 자료나 대학 교재 등 탈북민 개인에게 맞춰 수업을 진행한다.”

 

-탈북민이 영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은구) “어려워하는 부분을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다만 일부 탈북민의 경우 알파벳조차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읽고 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영어 자체가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미국, 영국, 인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연설 활동을 하고 있는데, 국제적인 활동으로 확장한 이유는.
(케이시 라티그) “시작은 사람들의 작은 질문에서였다. 사람들의 요청을 받다 보니 인도의 아시아 자유 포럼에서 연설해달라고 초청을 받기도 했다. 탈북민들이 해외에서 연설할 때 많은 이들이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후 우리는 탈북민들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조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최소 13개국을 방문했고, 일부 탈북민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향후 계획 중인 프로그램이 있다면.
(이은구) “일반 영어 튜터링을 확대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대학 입학이나 유학에 필요한 일반 영어 튜터링을 운영했었다. 그러나 튜터링은 영어 스피치 교육에 비해 더 철저한 관리와 교육 체계, 비용이 들어가 현재는 병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후에 전문 코디네이터를 섭외하거나 펀딩을 더 받아서 일반 영어까지 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은구) “최근 2030 젊은 세대가 통일 문제에 관심이 적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 인권 영어 프레젠테이션에서 열정적으로 발표한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스피치를 보면서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통일이나 탈북민 문제에 대해 젊은 세대의 관심이 이어지면 좋겠다. 3만 5천 명이라는 적지 않은 수의 탈북민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굳이 어떤 행동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번쯤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고 검색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난해

알파벳부터 배워 하버드 연설까지… 세상과 소통하는 12년간의 여정

“영어를 배웠으면, 써봐야 의미가 있다”는 이은구 대표의 말은 FSI가 걸어온 지난 12년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탈북민들이 직접 영어를 사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고자 한 것이 FSI 영어 스피치 대회의 출발점이었다. 2014년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 자유 포럼’ 연설을 계기로 시작된 탈북민 영어 말하기 대회는 올해로 22회를 맞았다. 영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며 탈북민들은 1대1 교습으로 영어를 배우고, 국제 무대에서 자신이 경험한 북한에서의 삶과 여정을 영어로 공론화시킬 수 있었다. 한때 영어 알파벳조차 낯설던 탈북민들이 지난해 4월에는 케이시 대표의 모교인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북한 인권을 주제로 연설했다. 오늘날 그들이 국제 무대로 나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영어교육 이었다. 이은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북한학 전공. 영국 셰필드대 국제정치학 석사. 2010~2016년 북한인권정보센터와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연구원. FSI 공동 대표(현). 케이시 라티그, 미국 하버드대 교육학 석사. 2023년 12월 탈북민 정착지원에 대한 공로로 통일부 장관 표창 수상. FSI 공동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