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대주의, 다시 해석하기

27. 우리나라에는 왜 문화 전유 논의가 부족한가

2025-11-25     김희량 칼럼니스트

 

해방

지난 글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다뤘고 그 이전에도 퓨전한복, 파리 패션 위크에 등장한 한국인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살펴보며 우리와 서구의 관계를 돌이켜보고자 했다. 그때마다 우리 문화를 서구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대주의'라는 용어가 보편화된 만큼 우리의 주체성이 부족한 게 아닐지 돌이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엔 식민 지배와 전쟁, 분단이라는 굴곡진 현대사를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역사·문화적 맥락이 있다.

 

먼저, 우리나라는 식민 지배를 당할 때부터 다른 식민지와는 차이가 있었다. 보통 식민 지배는 지리적 거리가 먼 서양 국가와 비서양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멀고 잘 모르는 미지의 국가가 아니라, 인접해 있고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며 역사적으로 관계가 지속됐던 국가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게 됐다. 일본 역시 비서구 제국으로서 불완전한 위치에 있었다.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대표적인 논리는 근대화인데, 일본은 근대성을 증명하기 위해 서양 문물을 경유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19세기 말 서울에는 미국인이 전기·전차·전화를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었고, 조선은 일본이 가진 불완전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근대성을 수용하는 것은 일본의 근대성을 불인정함으로써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맥락이 있었다. 이에 식민지 조선에는 서구 문물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특수한 배경이 존재했다.

 

해방 이후에는 전쟁을 겪고 황폐화된 상태에서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했다. 1950년대부터 ‘경제 성장’, ‘국가 재건’이라는 키워드는 우리나라에게 너무나 중요한 과제였다. 경제 성장이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처럼 포장된 측면도 있지만, 당시에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동의 목표로 이해됐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믿을 만한 건 수출밖에 없었다. 이는 글로벌 가시성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다. 한국의 존재를 알리고 더 많은 수출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수십 년 간 국가적으로 중요한 목표를 차지했던 것이다.

 

일본에 대한 거부감에 기반해 서구 문물을 친밀하게 여기고 경제 성장을 위해 글로벌 가시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문화적인 인식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 전유에 대한 논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이런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그 다음 방향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가시성이 절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자세로 한국 문화의 활용을 바라볼 수 있을까?

 

 

김희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