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엑셀인데요?”
15. 기계화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
최근 대학가에서 AI를 이용한 커닝 문제가 화제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벌어지는 상황과 그 대응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엑셀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엔 신입사원에게 필기도구와 계산기를 사주는 것이 관례였다. 옆자리 선배는 내게 “엑셀로 하면 빠르겠지만, 계산기로 직접 계산해 보는 게 도움이 될 거야”라며 두툼한 손가락으로 계산기를 잘도 두들겼다. 다른 선배 하나는 “엑셀이면 다 되는데 왜 자꾸 계산기를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투덜거렸다.
어느 날 내가 임원에게 숫자로 가득한 B4 크기 자료를 건넸다. 임원은 받아보자마자 “이거 계산이 틀렸는데? 왜 그러지?” 기습 질문을 던졌다. 궁색한 나의 대답은 “이거 엑셀로 만든 건데요”였다. 분명 3~4명이 밤새워서 하던 일을 한 명이 반나절 만에 끝내게 해주는 엑셀을 사용하는 것이, 극도의 효율성을 따지는 회사에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계산기 사용을 권했던 선배의 의도는 빠른 계산이 아니라 숫자의 의미를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문해력 이야기만 나오면 레거시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쉽게 주장하는 말이 있다. “문해력을 높이려면 활자를 읽어야 해!” 그러면서 정부가 활자매체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튜브 같은 시청각 자료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오로지 시각에 의존하는 활자를 사람들에게 반 강요하는 정책이 과연 유효할까? 그건 시청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시대에 문해력을 활자 해석 능력으로만 좁히는 정책이 아닐까 싶다. 차라리 편향되거나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고, 다른 사람들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게 돕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AI는 이미 우리 삶에서 빼내지 못할 만큼 깊이 스며들었다. 기업뿐만 아니라 각국의 정부도 AI 산업에 총력전을 펼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은 AI와 관련된 반도체고, 전세계에서 가장 큰 시가총액을 가진 회사는 GPU 칩을 공급하는 엔비디아다.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의 관심과 자본과 활용이 AI로 몰리고 있다. 시험을 치르는 데에 ‘AI를 썼네 안 썼네’라는 문제는 본질이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건 인간이 해야 할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AI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지 그 방향성과 기준을 빨리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입 사원 시절의 나처럼 “이거 AI가 한 건데요”라는 답밖에 못 하는 기술에 먹혀버린 인간만 남게 된다.
토리텔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