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뚝뚝’… 자본 떠나고 청년 일자리는 감소
환율 1400원대 장기화… ‘뉴노멀’ 시대 고환율발 물가 충격, 내년 체감 더 커진다 취업 절벽과 생계비 상승, 청년세대 부담
Prologue
지난 11월 12일 원/달러 환율이 1465원까지 올랐다. IMF 금융위기 다음으로 위기급이라고 평가받는다. 고환율은 금융시장의 숫자 문제가 아니다. 해외 결제 비용 상승, 생활물가 압박, 기업 원가 부담 증가 등 국민 생활에 직격탄을 날린다. 이는 장기적으로 청년 일자리 감소에도 큰 영향을 주는 방아쇠이기도 하다.
세금 과다해 기업 탈출
한국 경제가 위험하다. 환율은 치솟고, 자본가와 기업은 해외로 떠나고 있다. ‘2025 부의 이동 보고서(헨리 앤드 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한국에서 빠져나갈 백만장자가 24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 세계 4위 규모다. 1위는 영국(1만6500명), 2위는 중국(7800명), 3위는 인도(3500명), 다음으로 4위가 한국이다. 정치·사회적 불안정도 원인 중 하나이지만, 전문가들은 경제적 이유가 크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법인세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높고,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위다. 특히 상속세 실효세율은 OECD 평균의 4배다. 이에 더해 현 정부는 법인세 인상, 노란봉투법 등 ‘기업 옥죄기법’으로 기업의 숨통을 조인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 기업은 노동·환경·조세 등 여러 분야에서 추가적인 법적 준수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규제 비용이 늘어나면 기업은 수익성이 떨어지고, 투자 매력을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세금이 낮고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자본과 기업이 이전해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종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역동성 둔화가 관찰되고 효과 분석이 없는 규제 법안들도 우려된다. 외국 대비 과도한 법인세와 상속세, 그리고 규제는 소송과 형사처벌 리스크로 이어지면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국내시장을 외면하게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등이 규제 자체의 고유 목적이 있더라도 정당성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우리나라 자본이 해외로 이탈, 환율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와 강달러 현상도 주요 배경 중 하나다. 지금 한국 기준금리는 2.5%, 미국 기준금리는 4%다. 이는 달러를 보유하면 이익을 보는 구조로, 강달러 현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한국은 현재 가계부채 비율이 높아 함부로 금리를 높이기 어려운 상황이며,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시 자본 유출이 가속화하고 환율 상승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 이에 대해 김대환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금리가 높고 한국의 금리가 낮으면 환율이 올라가게 된다. 다만 시중에서 말하는 금리와 환율의 관계는 한국 금리가 내려가면 환율이 올라가는 부분에만 주목하는 것 같다”며 “시장에서 한국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없어 금리차만큼 환율이 오르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최근 서학개미 증가를 환율 상승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나타나고 있다. 서학개미는 해외 주식을 많이 사들이는 개인 투자자를 뜻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학개미들은 305억8941만 달러(약 45조 원)의 미국 주식을 순매수했다. 작년 전체 순매수 규모(105억4500만 달러)의 3배 수준을 순매수한 것이다. 이에 정부와 한국은행은 서학개미를 환율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달 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중 주요 기관투자가의 외화증권 투자 동향'에 따르면 개인투자자 외에도 기관 등 다른 부문의 해외 투자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전문가와 개인투자자들도 서학개미가 주원인으로 지목되기는 무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투자자가 미국 주식을 사고 안 사고는 의미 있는 요인이 아니다”라며 “국내 요인으로 환율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설명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학개미’ 원인보다 결과 가까워
오히려 서학개미 증가를 환율 상승의 결과로 보는 관점이 두드러진다. 이 교수는 “서학개미는 구조 변화의 일부이고 결과다. 지난 11월 한 달 동안 외국인 주식 순매도 규모는 KOSPI 역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며 “한 달 동안의 외국인 포지션 조정이 서학개미 전체 잔액의 상당 부분에 해당할 정도로 크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세입자가 다른 집 사러 간 것을 문제로 봐야 할 것이 아니라, 집주인이 대량으로 집을 판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전문가 의견을 비롯해 비판 여론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해외투자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에 대학생 한창민(23)씨는 “해외투자를 막는 방식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청년 박 모(25)씨 역시 “화폐 가치가 떨어지니까 달러로 환전하고 해외 기업에 투자하는 건데, 해외투자를 제한하는 정책은 국민한테 경제 책임을 전가하는 거로 생각한다”고 했다.
일본도 엔화 약세가 장기화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달 5일 기준 원/엔 환율은 949.66원으로 엔화 가치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작년 11월 1% 수준에서 올해 11월 말 1%대 중반까지 오르며 10여 년 만의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카이치 총리 취임 후 200조 원 규모의 대규모 재정지출 기대가 커지면서 국채 공급 증가 우려가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운 영향으로 분석된다.
경제 타격은 청년층에 전가
고환율과 자본 유출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의 기반이 구조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된다. 달러 기준 명목 GDP가 실제로 줄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통화기금(이하 IMF)은 올해 한국의 달러 기준 명목 GDP를 1조 8586억 달러로 전망했는데, 이는 작년보다 168억 달러 감소한 규모다. 원화로 보면 2%대 성장했지만, 환율이 작년 대비 4% 가까이 뛰면서 이를 상쇄하는 ‘국가 경제 규모의 축소’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부른 것이다.
특히 한국은 원자재·에너지·식료품 등 핵심 물자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 환율 상승이 곧바로 제조업 원가와 생필품 가격의 동반 상승으로 이어진다.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면, 임금 인상 속도가 둔화하며 청년층 신규 채용도 줄어드는 등 고용 시장에 충격이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 이 교수는 “R&D·본사·지주회사까지 해외로 가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청년층의 ‘양질의 정규직’ 기회가 직접적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환율, 노동 규제, 법인세 등의 변수는 기업이 해외로 이전하게 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고, 청년 일자리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투자 여력 위축 역시 심각한 문제다. 환율 불확실성이 커지면 경제주체들을 이에 대비하기 위해 달러를 모으고 변동성에 대비한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대비 21%나 급증한 바 있다. 또한 기업은 설비투자와 R&D 지출을 보류하고 해외 투자를 부추기게 된다. 개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올해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도 92% 가까이 증가한 바 있다. 이는 곧 국내 성장률 둔화와 생산성 정체로 이어진다. 부유층은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고 중산층 이하 가계는 생활 고통을 체감하는 ‘이중 압박’이 나타나 사회적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환율 고물가 시대에 청년층이 받는 충격은 가깝고, 직접적이다.
등록금·주거비·식비 등 생계비 부담은 높아지는데 취업 시장은 더 좁아지는 ‘이중 압박’이 현실이 되고 있다. 고환율이 자산가들의 해외 이전을 자극하고 중산층 이하 가계의 소비 여력을 약화하는 동안, 미래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청년층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충격이 일시적 파동이 아니라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고환율이 고물가와 자본 이탈을 낳고, 다시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악순환은 결국 미래세대가 떠안아야 할 부담을 더 키운다.
Epilogue
고환율 국면은 위기라기보다 ‘경고’에 더 가깝다. 한국 경제가 청년에게 다시 기회 구조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려면, 자본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정책 일관성과 산업 경쟁력을 다지는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 환율 불안이 ‘뉴노멀’로 고착되느냐, 체질 개선의 전환점이 되느냐는 결국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피부로 감당할 세대는 바로 청년층이다.
송지혜·김민수·구민채 기자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