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패션 

28. 낯섦에서 포용까지

2026-03-24     김희량 칼럼니스트

 

1980년대

이번 2026 F/W 샤넬 컬렉션은 1920년대 코코 샤넬의 가르손느(garconne) 룩을 다시 불러냈다.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인 굴곡은 사라지고 일자로 떨어지는 실루엣과 낮게 내려간 허리선은 1920년대 플래퍼(flapper)들의 시대를 연상시킨다. 이는 ‘여성 해방’이라는 수식어가 코코 샤넬에게 붙은 이유이자 그의 상징적인 스타일이다.


100년이 지나 재등장한 가르손느 스타일은 당시 굉장히 변혁적이었다. 이전의 여성복은 허리가 잘록한 옷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납작한 실루엣과 짧은 머리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아마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로 정의되던 규범적 여성미에서 벗어난 첫 순간이었을 테다. 여성의 스타일이 남성화되었다고 설명되기도 했다. 현대적인 시각으로는 크게 새롭지 않지만 당시엔 여성과 남성의 명확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시도였다.


과거 젠더의 기호를 뒤섞거나 모호하게 만들었을 때 그 낯섦이 감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내용을 썼다. 이 시기의 가르손느 룩, 플래퍼 스타일도 같은 효과를 가졌다. 트렌디함과 진보성을 보여주기에 새로운 젠더 관념을 드러내는 것만큼 직접적인 표지가 없었다. 패션계에서 새로움을 찾는 방법은 젠더의 ‘경계’에서 재료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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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더의 모호함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를 맞이해 더 적극적으로 등장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경계와 구분을 허무는 경향으로 설명되는데 성과 젠더는 선이 명확하게 그어진 범주이자 분류 체계라 자주 인용됐다. 이렇게 1980년대는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 스타일이 시대를 사로잡았다. 이 시기 앤드로지너스 스타일은 여성인지 남성인지 판단할 수 없는 모호한 모습으로 중성적인 매력이라는 이름 아래 유행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도 몇십 년 전의 이야기가 됐다. 패션 연구 학자들은 새로운 중성성의 출현을 말한다. 이전에는 모호한 표현으로 경계를 흐렸다면 이제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표지를 병치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현재의 한국이 보기에는 조금 낯선 스타일일지도 모른다. 젠더 경계의 해체가 포용을 위한 시대적 흐름이라면, 이 생경함은 불편함을 넘어선 새로운 긍정의 가능성이 아닐까.

 


김희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