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한 공간을 채우는 특별한 우정
116. 에세이-전성진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출판사: 안온
출판일: 2024년 10월 22일
페이지: 292
※ 도서관 보유 여부
(죽전: O, 천안: O)
“숭진. 여기는 너의 집이야. 내 집이기도 하고. 네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해도 돼.” p.47
리히텐베르크의 조용한 동네에 있는 한 집에서 오십 대 독일인 남성 요나스가 이십 대 아시아 여성 성진에게 말한다. 이 둘은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다르지만 하우스 메이트다. 이 책은 저자이자 화자인 성진의 담백하지만 촘촘한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요나스는 하우스메이트 구인글에 ‘남자보다 여자와 더 잘 맞는다’는 조건을 적은 백인 중년 남성이었다. 하루 한 번은 스몰토크를 나눠야 하는 귀찮은 하우스 메이트였고, 어느 날은 도움 되지 않는 고민 상담사였으며, 허구한 날 ‘알레스 굿(다 좋아)’을 외치는 당뇨 환자이기도 했다. 이런 나날들이 쌓여 낯선 타국에서 성진은 어느새 가장 오래된 하우스 메이트가 되었다.
“그냥 네 앞에 있는 로테 그뤼체를 먹어.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 어느 날 성진의 고민을 들은 요나스가 건넨 말이다. 로테 그뤼체의 부드러운 푸딩 질감은 거칠었던 그녀의 마음을 다독인다. 성진은 낯선 타국에서 그가 차려준 식탁 앞에 앉아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음미한다.
성진은 일련의 시련을 겪은 요나스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운다. 어린 시절 겪은 부모의 이혼, 어머니의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와, 공황장애, 동성애자이기에 늘 사랑을 타인에게 설명해야 했던 날들에 더 이상 갇혀 있지 않다. 타지에서 겪은 인종차별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문체 또한 이 덕분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이 책은 인간 자체가 주는 관계의 힘을 믿게 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성진과 요나스의 옆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본 적 없는 독일의 어느 동네 골목을 걷고, 먹어본 적 없는 음식들을 상상한다. 낯선 곳이 익숙한 곳으로 바뀌는 성진의 일상은 독자의 세계를 넓힌다.
둘의 이야기를 읽으며 낯선 하루를 채워준 소중한 친구들이 떠올랐다. 베를린에는 육개장은 없지만 특별한 친구 요나스가 있다.
※ 이 도서는 기자의 주관적인 추천 도서입니다.
이정연 기자 dlwjddu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