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해도 남는 건 독박뿐”… 리더 포비아 확산

3명 중 1명 관리직 의향 없다 중간관리직 외면, 조직 공백 승진 시 일 가중·워라밸 실종 책임 ↑보상↓ 역전 구조 돼

2026-04-07     이원용·강민·강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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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회피 사회의 명암

#1 IT 기업에 종사하는 이창용(34·가명)씨는 최근 팀장 보직 제안을 거절했다. 늘어나는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에 비해 얻는 보상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팀장이 되면 실무에 더해 팀원 관리와 성과 압박까지 떠안아야 한다”며 “그 부담을 감당하기에는 해당 연봉 수준이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2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김용헌(29)씨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연봉이 조금 오르는 것보다 퇴근 후 개인 시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책임만 늘고 권한은 부족한 팀장 자리는 매력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직장가와 대학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리더 포비아(Leader Phobia)’다. 이는 리더 직책이 요구하는 높은 책임과 개인적 희생에 대한 부담으로 승진을 회피하려는 현상을 뜻한다. 과거 승진이 성공의 상징이었다면 오늘날 20·30 세대에게 리더직은 ‘가성비 낮은 선택’으로 인식되고 있다. 작년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진행한 ‘2030 직장인의 리더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리더를 맡고 있지 않은 직장인 중 중간관리직을 맡을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36.7%, 없다는 응답은 32.5%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기피 이유로는 ‘팀·조직 성과에 대한 부담(42.8%)’과 ‘업무량 증가 우려(41.6%)’가 꼽혔다.

 

승진 기피 현상이 나타나며 조직의 중간관리층도 약화하고 있다. 실무자와 경영진 사이에서 의사결정을 조율하고 현장의 의견을 상부에 전달하는 중간관리자가 조직의 ‘허리’ 역할을 담당했지만 최근에는 업무가 과중하다는 인식이 퍼지며 해당 직무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SK그룹 교육 플랫폼 ‘mySUNI’의 임창현 리더십 연구가는 “과거 리더는 숙련을 바탕으로 조직을 관리하는 역할에 집중했다면, 오늘날 리더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문제 해결까지 요구받는다”고 설명했다.

 

변화한 조직 환경은 승진 기피 현상을 만드는 요인이다. 특히 IT 업종을 중심으로 수평적·유연한 조직 문화가 확산하며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보다 개인의 전문성을 중시하는 이들이 늘었다. 관리직 승진이 필수적인 경로가 아닌 선택 가능한 직무로 인식되면서 리더직 외면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변화하는 가치관과 일의 경로
청년층의 가치관 변화는 리더 기피를 심화시키고 있다. 박재춘(경영)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협업 확대와 플랫폼 경제 확산 등 조직 중심의 성장 경로가 줄어들었다. 이후 청년 세대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됐다”며 “타인의 성과를 관리해야 하는 리더 역할보다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하며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해외도 이런 흐름이 관찰된다. 해외에서는 관리직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현상을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이라 부르며 직장가의 당연한 세태로 주목받고 있다. 작년 4월 7일 글로벌 채용 컨설팅 기업 로버트 월터스 조사에 따르면 Z세대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관리직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71%는 타인을 관리하는 소모적인 일보다 개인의 성장과 기술 축적을 우선시했으며 65%는 관리직 업무가 높은 스트레스에 비해 처우가 충분하지 않다고 인식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약 80%가 팀장급 승진을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중간관리자 역할이 더 이상 보상이나 성취의 상징이 아니라 과도한 책임과 감정 노동이 따르는 ‘징벌적 보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업(副業)과 재테크 기회 확대도 리더 포비아에 영향을 미쳤다. 디지털 발전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소득 확보가 가능해지면서 조직 내 승진에 대한 매력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퇴근 후나 쉬는 날에 할 수 있는 배달 라이더와 유튜버 등 부업 경로가 다양하다.
국내·외 증시 호조 등으로 재테크를 통한 수익 창출 가능성이 커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시장 조사 업체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는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지며 부업을 뜻하는 ‘긱(Gig) 이코노미’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긱 이코노미 시장 규모는 작년 5822억 달러(약 839조원)에서 2034년 2조1784억 달러(약 3138조원)로 10년간 연평균 약 16% 성장할 전망이다.

 

대학가에도 번진 ‘리더 공백’
리더 포비아는 대학가에서도 뚜렷하다. 우리 대학을 포함한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자치기구 입후보자 부재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2026학년도 총학생회 입후보자가 없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 중이다.

 

동아리 등 학생 자치 조직 역시 지원 감소를 겪고 있다. 서은지(고분자공3) 죽전캠퍼스 중앙동아리 놀이사랑 회장은 “임원직의 책임을 부담스럽게 느껴 지원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며 “차기 운영진 모집에서도 지원자가 모이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학내 풍경도 바뀌었다. 팀 프로젝트를 자주 하는 한윤송(경영3)씨는 “조장을 맡으면 책임은 커지는데 실질적으로 얻는 것은 크지 않아 선뜻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해은(식품자원경제2)씨는 “조장이 되면 역할은 늘어나지만 보상은 동일해 부담이 크다”며 “대부분이 조장을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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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재설계에 따른 리더십 변화
승진 기피가 확산하면서 조직 운영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다. 관리자가 부족할 경우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책임이 일부 구성원에게 집중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차세대 리더 육성에도 차질이 생긴다. 전이영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리더에게 책임은 집중되지만 권한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구조가 핵심 문제”라며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가 리더 회피, 승진 기피 현상을 낳고 있다. 권한과 책임이 균형을 이룰 때 리더 포비아도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리더 포비아를 극복하고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중 경력 제도(Dual Career Ladder)가 꼽힌다. 예컨대 구글(Google)은 관리직(Manager)과 전문직(Individual Contributor) 트랙을 분리해 리더 역할을 연공서열에 따른 보상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직무로 정의한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역량 있는 하급자가 매니저로서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시니어급 상급자들이 기술적 파트너로서 리더를 서포트하는 유연한 구조가 정착됐다. 관리 업무에 대한 부담은 덜고 실무 전문성은 극대화하는 이러한 수평적 리더십 모델은 구글이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불필요한 승진 압박을 줄이고 조직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전문가들은 제도뿐 아니라 조직문화 변화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전 교수는 “세대 간 갈등과 고용 불안 등 구조적 요인도 리더 기피를 심화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이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며 “리더 역할이 부담이 아닌 성장의 기회로 인식되도록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더십의 방식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교수는 “한 명의 리더가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역할에 따라 리더십을 나누는 공유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리더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조직 차원의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리더를 통제자가 아닌 팀을 지원하는 조력자로 재정의할 때 리더 역할에 대한 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원용·강민·강영인 기자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