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에 새긴 79년의 단국 정신… 풍경이 된 기록을 깨우다
캠퍼스 곳곳에는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맞섰던 선배들의 숨결이 투박한 비석의 형태로 남아 있다. 매일 수천 명의 발길이 오가는 교정에서 이 기념비들은 어느덧 익숙한 풍경의 일부로 전락했거나, 무성해진 화초와 물리적인 장벽에 가로막혀 점차 '읽히지 않는 기록'이 돼가고 있다. 하지만 비석에 새겨진 정갈한 글귀들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대학이 걸어온 역사가 응축된 결정체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기원이다. 창학 79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본지는 화단에 가려지고 세월에 깎여가는 기념비 6곳을 다시 찾았다. 이끼 낀 돌등 뒤에 숨겨진 뜨거운 결의를 복기하는 일은 잊힌 선배들의 외침을 깨워 우리 대학의 건학 이념을 다시금 현재의 언어로 되살리는 엄숙한 여정이 될 것이다.
화단에 갖힌 민주주의의 열망 | 4·19 기념탑
혜당관 앞을 지키는 4.19 기념탑은 우리 대학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자 고(故) 김성수 열사의 희생을 증언하는 교내 대표 사적지다. 4·19혁명을 동학농민혁명의 저항 정신과 함께 분단된 조국에서 민주주의와 통일을 향한 열망을 선언한다. 1988년 서울캠퍼스에 처음 세워졌을 당시 이 비석은 광장 한복판에서 누구나 사방으로 접근해 뒷면의 결의문을 읽을 수 있게 개방된 상태였다. 그러나 2007년 죽전 이전 과정에서 비석 뒷면이 화단에 밀착됐다. 선배들의 준엄한 문장을 읽으려면 잔디를 가로질러 좁은 틈새로 몸을 밀어 넣어야 한다.
시대를 꿰뚫는 현대 저항문학 시인 | 신동엽 시비
상경관 입구, ‘껍데기는 가라’로 시대를 통찰했던 민족시인 신동엽의 시비는 우리 대학 인문학의 깊은 뿌리를 상징한다. 1953년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등단하며 한국 저항문학의 정수를 보여줬다. 비석 등 뒤에는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강렬한 구절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스스로 ‘알맹이’ 같은 삶을 살라던 시인의 준엄한 외침은 오늘날 취업과 스펙 쌓기에만 매몰된 채 살아가는 후배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고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비상을 꿈꾸는 인간의 초상 | 김용호 시비
사범관 앞 학산(鶴山) 김용호(국어국문) 교수의 시비는 1975년 한남동에 세워진 이래 반세기 넘는 세월을 견뎌왔다. 그는 생전 시집 ‘날개’로 문학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제4회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비석에는 시 ‘날개<Ⅰ>’가 적혀있다.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였던 그의 시정신은 죽전 이전 당시 도서관 숲길에 방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2009년 현재의 자리에 재건립됐다. 시인이 평생을 바쳐 노래했던 자유의 가치는 비바람에 깎인 비석의 질감만큼 깊고 묵직하게 사범관을 오가는 예비 교사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만남의 동산이 된 민주화 운동의 상징 | 최덕수 열사 추모비
천안캠 학생회관 옆, 1988년 5월 18일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법학과 최덕수 열사의 추모비는 한때 수난의 대상이었다. 1991년 괴한에 의해 파손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동문과 재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그해 가을 다시 세웠다. 우리 대학은 2018년 열사 30주기를 맞아 이 일대를 만남의 동산으로 조성하며 예우를 갖췄다. 해당 추모비는 학내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그날의 화염을 기록한 역사다.
스물한 살 조국 수호를 위한 꽃다운 순국 | 서정우 하사 추모비
천안캠 사회과학관 앞에는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서정우 하사의 숭고한 넋이 깃들어 있다. 해병대 자원입대 후 말년 휴가를 가려다 포탄이 쏟아지는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던 스물한 살의 청년. 2008년 법학과로 입학한 그는 이 건물을 자주 거닐었다. 그가 머물던 건물 앞에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부모님이 아들의 꿈을 위해 기탁한 장학금은 후배들의 학업을 도왔으며 비석은 학생들에게 애국심의 무게를 보여준다.
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의 이정표 | 6·15 공동선언 기념비
4·19 기념탑 인근 6·15 공동선언 기념비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성과를 기념해 장충식 당시 이사장을 비롯한 학생과 교직원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분단국가의 역사를 함께해온 대학으로서 민족 화해와 평화통일을 향한 염원을 담았지만, 남북 관계만큼이나 학생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있다. 통일의 마중물이 되길 바랐던 이 기념비는 이제 교정의 익숙한 풍경 일부가 돼 언젠가 다시 올 화해의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강영인·김민수·이서연·이원용 기자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