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역설: 화려한 간판과 단단한 사유
간판 바꾼 단과대, 진짜 융합 필요 느리지만 더 깊어지는사색의 힘 도구의 습득 넘어 본질의 질문으로
요즘 대학가의 풍경 중 하나. 학과 이름 앞에 ‘AI’가 붙는 것이다. 우리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대학은 2026학년도에 인공지능학과를 신설했고, 2027년은 AI건축융합학과를 신설할 예정이다. 이는 정부의 확대된 지원으로 뒷받침된다. 그러나 학과 이름이 바뀌는 일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가 아니다. 대학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 약속은 정확히 무엇을 약속하는가.
거대한 정책 이야기에 앞서 내 책상의 작은 풍경부터 말하고 싶다. 나는 매일 AI와 대화하며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한다. 이 글 또한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가졌지만, 그것이 유용해지는 순간은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그 순간은 내가 정확한 질문을 던질 때, 답을 의심할 때, 내 맥락에 비추어 판단할 때다. 이 조건이 빠지면 AI는 그럴듯한 거짓을 만들어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즉, ‘할루시네이션’이다. 이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생성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답변하는 현상을 뜻한다. 그 결과 두 무능이 만나 합리적으로 보이는 결과물이 생산된다. AI 시대의 가장 위험한 풍경이다.
깨달은 사실 하나. AI 시대에 더 강해져야 하는 것은 AI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다. AI와 마주 설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 의심하는 힘, 정확히 질문하는 능력, 답의 한계를 가늠하는 분별, 왜 이것을 묻는가를 재질문하는 철학적 태도. 이는 공학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문대생이 자료를 정리할 때도, 경영대생이 분석을 맡길 때도, 예술대생이 생성형 도구를 다룰 때도 똑같이 작동한다.
새 AI 융합학과들의 안내문에는 비슷한 단어가 등장한다. 비판적 사고, 책임, 본질을 판단하는 힘, 도구보다 이해, 기술보다 책임. 이에 깊이 동의한다. 그래서 오히려 묻고 싶다. 이 슬로건이 어떻게 실제 교육으로 번역되는가. 새 커리큘럼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전통 과목에 AI 도구가 더해진다. 머신러닝·데이터 분석·생성형 AI·시뮬레이션. 모두 정교한 도구의 지도다. 그러나 판단력을 어떻게 기를지에 대한 교과는 보이지 않는다. ‘비판적 사고’란 과목이 1학년에 들어가 대학 내내 4년을 뒷받침한다. 그러고는 표지에 “JUDGEMENT FIRST”라 적는다. 판단력은 도구를 배울 때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오히려 도구가 답을 내주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의식적으로 단련되지 않으면 약해진다. 그러나 정부 지원금은 가시적으로 측정 가능한 성과를 요구한다. 논문·취업률·창업 실적. 여기서 판단력은 측정되지 않는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길러지지 않는다. 첫 번째 역설이다.
두 번째 질문, ‘융합’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를 나란히 두는 일이 아니다. 두 영역이 만났을 때 각각이 더 이상 같은 것이 아니게 되는 일이다. 진짜 융합은 원래 학문의 정의 자체를 다시금 묻게 만든다. 현재 건축은 현장에서 짓는 방식에서, 공장에서 만들어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동 중이다. AI와 건축이 가장 깊이 융합되는 무대가 바로 그곳이다. 그러나 새 커리큘럼에는 그 흔적이 희미하다. 옛 패러다임 위에 AI를 얹은 형태다. 건축만이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AI 융합 경영학은 경영의 정의를, 의학은 진단과 치료의 본질을, 인문학은 읽고 쓰고 사유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는가. 이 질문 없이 ‘AI’를 학과명에 붙이면 그것은 ‘융합’이 아니라 ‘부착’이다. 그저 옛집에 새 간판을 다는 일이다. 두 번째 역설이다.
두 역설은 뿌리가 동일하다. 충분히 깊은 질문을 던지지 않은 것. AI가 강해질수록 요구되는 것은 더 ‘인공지능적인’ 능력이 아니라 더 ‘인간적인’ 능력이다. 의심하고, 묻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힘. 이는 학과명에 ‘AI’를 붙인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느리고 측정되지 않는 교육. 즉, 읽기·쓰기·토론·철학이다. 자기 학문의 본질을 끈질기게 다시 묻는 행동에서 길러진다.
이 글은 어느 학과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새 학과들의 슬로건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글이다. 두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 도구를 가르치기 전 ‘도구를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답을 만드는 법 이전에 질문을 다듬는 법을 말이다. 둘, 자기 학문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정직하게 응시해야 한다. AI를 학문에 얹는 일이 아니라 AI 앞에서 자기 학문의 정의를 다시 묻는 일. 이 질문은 학과 단위에서만 던질 수 있다.
캠퍼스에는 매일 새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진짜 교육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학생 한 명이 의심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학과 신설보다 훨씬 더 느리다. 그 느린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면 우리는 ‘AI 융합학과’를 가진 대학은 될 수 있어도 AI 시대를 살 인간을 길러내는 대학은 되지 못할 것이다. 도구보다 이해, 기술보다 책임, 판단이 먼저다. 이 문장이 표지에서 강의실로,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사유로, 사유에서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로 옮겨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