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중동 거쳐 포르투갈까지…12개 언어의 마술은 언제 걸리나
단국 외국어대의 빛과 그늘 전국 3위 규모의 외국어 전공 교수 연구, 사업 수주 큰 성과 취업률 53%, 통번역대학원 없어 AI 융합 실무형 커리큘럼 시급
“12개 외국어 관련 전공. 국내 최초 몽골학과 개설. 2017년부터 이어온 특수외국어교육 진흥사업 전문기관 지정-.”
우리 대학 외국어대학이 내세우는 이력은 화려하다. 종합대학 중에서는 한국외대, 부산외대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외국어 전공을 운영하고 있어 교내외에선 ‘단국외대’라고도 불린다. 몽골학·중동학·포르투갈브라질학·베트남학 등 희소성 높은 특수외국어 전공부터 중국학·일본학·영미학 등 일반 어학 전공까지 아우르는 거대 단과대학이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성적표다. 그러나 산업 현장, 미디어, 통번역 업계에서 ‘단국대 외국어 전공자’의 발자취를 찾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 유치 성과의 그늘…인재는 보이지 않아
우리 대학은 청운대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교육부 특수외국어교육 진흥사업 컨소시엄을 운영했다. 작년부터는 단독 사업단 체제로 전환하며 교육 자율성을 확보했다. 현재 몽골학·중동학·포르투갈브라질학·베트남학 등 4개 전공을 필두로 지역사회 다문화 멘토링, K-MOOC 강좌 등을 운영 중이다.
교수진의 연구 성과 역시 독보적이다. 1993년 국내 최초로 개설된 몽골학과의 몽골연구소는 ‘몽한대사전’을 편찬했다. 작년엔 송병구(몽골) 교수가 몽골 정부 최고 권위의 북극성 훈장을 수훈해 위상을 입증했다.
중동 정세를 연구하는 GCC 국가연구소 역시 아랍어 원전 자료를 직접 활용하는 서구 외의 독자적 연구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관 611호에 위치한 GCC 국가연구소는 아랍어 원자료를 직접 활용해 서구 중심 시각에서 벗어난 중동 연구를 지향한다. 송상현 GCC 국가연구소장은 “지역 언어를 통해 직접 자료를 읽는 것이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학술적 성취가 ‘졸업생의 사회 진출’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중동이나 중남미 등 국제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방송에 출연해 전문적인 분석을 제공하는 이들은 대다수 한국외대 출신 교수나 전문가들이다.
실제로 우리 대학 아랍어 전공 졸업생 A(중동)씨는 “매체나 공공기관, 대기업의 아랍 관련 요직은 늘 한국외대 학연이 꽉 잡고 있다”며 “우리 대학에도 훌륭한 연구소와 교수가 있지만, 졸업 후 사회에서 끌어줄 ‘단국대 라인’이 전무해 전공을 살려 진출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털어놨다.
학교 당국이 홍보하는 아웃풋의 면면을 살펴보면 착시 효과가 뚜렷하다. 2026학년도 학교 진로취업 가이드북에 따르면 중동학전공 졸업생 일부가 주한 아랍에미리트 대사관, KOTRA 등 외교·공공 분야에 진출하고, 중국학전공 졸업생이 주요 언론사나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진출한 사례가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 우수 졸업생의 ‘개인기’에 의존한 성과일 뿐이다. 단국대학교 외국어대학이 자체 조사·연구·보고서 등을 통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우리 대학 외국어 전공 졸업생들의 전체 취업률은 약 53.4% 수준으로, 공학계열(74.2%)이나 상경계열(68.5%)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졸업 후 진출 직업군을 분석한 결과, 상위 직업으로 ‘일반 사무원’, ‘행정 공무원’, ‘단순 서비스업’, ‘영업판매원’ 등이 자주 언급된다. 전공 언어를 실무적으로 살려 취업하는 비율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현상의 근본 원인은 전문 통번역 교육 인프라의 부재에 있다. 전문 통번역대학원이 설치된 한국외대나 서울 주요 대학의 경우 학부와 대학원을 연계한 고도의 전문직 진출 파이프라인이 견고하게 작동한다. 반면 우리 대학은 실무 통번역 교육을 전담할 인프라와 특화 과정이 부족해 통번역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결국 타 대학 대학원으로 유출되는 구조적 악순환을 겪고 있다.
우수 사례의 이면, 취업 시장선 눈물
인공지능(AI) 번역 기술 또한 인간 통역사를 대체하는 시대에 진입하면서 외국어 교육은 전례 없는 생존 위기를 맞이했다. 단순한 회화나 텍스트 번역 수준의 교육으로는 더 이상 졸업생들의 설 자리가 없다.
장호득(중국) 교수는 “현재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 방향은 외국어와 AI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잘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FLAI Literacy(외국어·AI 융합 활용 역량)’를 갖춘 인재 양성”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교육 비전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교수진의 인식 변화와 대학 본부의 과감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외국어대학 내에서 AI 번역 기술을 접목하거나 빅데이터를 활용한 언어 분석 전공 수업은 전체 커리큘럼 중 5% 미만에 불과하다. 여전히 학풍은 전통 어문학 연구 중심에 머물러 있고, 실무형 인재를 길러낼 원어민 교수진 확보와 해외 대학 간의 안정적인 복수학위 인프라는 미비한 상태다.
문제는 희소성이 있는 특수외국어뿐만이 아니다. 인원수가 가장 많은 일본학·중국학·영어·프랑스어 등 일반 어학과 전공자들도 경쟁에 내몰려 있다.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 개설된 전공인 만큼 우리 대학만의 ‘차별화된 무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커리큘럼은 여전히 과거 회화와 문학 중심의 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한국외대 등 타 대학들이 ‘비즈니스 실무 번역’, ‘AI 번역 감수(Post-Editing)’, ‘정보기술(IT) 융합 어학’ 등으로 커리큘럼을 빠르게 재편하는 동안, 우리 대학 일반 어학과의 전공 수업은 여전히 고전 문학 독해와 기본적인 작문·회화에 편중돼 있다.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실무 역량을 쌓지 못해 취업 시장에서 요구되는 ‘실무형 어학 인재’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이나래(영어4)씨는 “과 특성상 일부 발표나 토론 수업이 운영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론 중심의 강의 비중이 크다”며 “실제 취업 준비와 산업 현장에서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관광·면접 영어 같은 실무 지향형 강의가 세분화되고 다양해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박서연(독일3)씨도 “학생마다 졸업 후 취업·통번역·유학 등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매우 다양한데 진로별 요구 조건에 맞추어 세분화된 실무형 커리큘럼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158개국 전체 대학 중 실제 외국어대학 전공생들이 전공 언어를 심도 있게 배울 수 있는 해외 거점 대학 협정은 소수에 불과하다. 몽골어·아랍어 등 특수외국어 권역은 파견 정원이 학기당 1~2명에 그친다.
일본·중국학 등 일반 어학도 경쟁력 복원을
특수외국어사업단을 통해 다녀오는 하계 국외연수 프로그램 역시 2~4주의 단기 문화 체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를 취업 스펙으로 활용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 학생들은 기업과 연계해 실질적인 통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실무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밀착형 커리어 프로그램’을 요구하고 있다.
외국어대학 측 역시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기존 어학 교육만으로는 학생들의 실질적 진로 경쟁력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교육 체계 전반의 전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장 교수는 “기존의 전통적 가치를 잘 살리면서도 과목의 특성에 따라 AI와 접목해 교육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커리큘럼 개편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기존 통번역 교육의 강점은 유지하되 글로벌 라운지, AI 및 외국어 실습실 등 하드웨어 인프라를 구축하고, COIL·Virtual Exchange 등 국제 연계형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AI 시대에 요구되는 프롬프트 활용 능력, 포스트에디팅, 할루시네이션 점검 역량까지 겸비한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 자매학교 기반 장·단기 교환학생 제도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외국어대학이 주관하는 HUSS사업단, 특수외국어사업단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현지화 체험과 같은 실무 중심 프로그램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서연·김혜인 기자, 조운서 수습기자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