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에도 밥 걱정 없어요“… 500원에 담긴 온정
식당 수익은 전액 기부· 선순환 체계 확립 단순한 식당을 넘어 아이들의 소통창구로
Prologue
한 학기를 마치고 맞는 방학. 아이들이 기다리던 쉼의 시간이 찾아오는 때,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작은 식당에서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고소한 밥 냄새 사이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번진다. 식당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단돈 500원. 이곳에서는 동전 하나가 밥과 반찬이 담긴 든든한 한 끼로 돌아온다. 지역 아이들을 환하게 맞이하는 ‘블라썸여좌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조합)’의 식탁에는 오늘도 따뜻한 밥과 이웃들의 온기가 함께 차려진다.
이웃의 온정이 한 곳에 모이다
지난 8월 14일, 본지 취재진이 방문한 조합은 아이들의 식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서너 명의 조합원들이 주방을 오가며 재료를 다듬고 간을 맞추느라 바삐 움직였다. 이날의 식단은 ▶쌀밥 ▶닭곰탕 ▶햄 부침 ▶콩나물무침 ▶볶은 김치 ▶멸치볶음 ▶오렌지 주스. 식당은 주력 메뉴인 스파게티·함박스테이크 등 아이들의 선호도가 높은 음식을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3년째 조합원으로 활동 중인 권영옥(43)씨는 “방학 중 아이들의 식사 문제를 지역 사회가 함께 해결하는 선한 영향력에 반해 조합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만든 음식 냄새가 퍼져 나갈 즈음,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와 식당 입구에 있는 저금통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었다. 조합원들이 인당 약 6500원 재료로 정성껏 차린 한 끼의 값이다. 부모님의 권유로 매년 식당을 찾는 박진우(14)군은 “식당 이용 전에는 부모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리다 밥을 먹었다”며 “저렴한 가격에 건강한 식단을 제공해 주는 식당 덕분에 부담 없이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형 돌봄 모델로 인정받다
조합은 2022년부터 방학마다 지역 청소년에게 균형 잡힌 한 끼를 500원에 제공하고 있다. 이영순(61) 조합 이사장은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밥을 먹으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500원 식당은 4년간 4000여 명의 지역 청소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현재 식당은 지역 주민들의 후원과 기부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인근 정육점 사장님의 고기, 중식집 사장님의 짜장 소스와 마을 주민들이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 등 다양한 식자재들이 아이들이 먹는 식단의 원천이다. 그 결과 지난 7월 2일 ’협동조합의 날‘ 행사에서 기획예산처 장관상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조합 역시 아이들이 낸 500원을 지역사회에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어버이날 지역 행사 기부와 인근 학교 졸업식에 장학금을 전달했다”며 “큰 금액은 아니지만 지역과 함께하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조합은 학교 석식을 먹지 못하는 지역 청소년에게 식비를 지원하고 있다.
500원 식당이 처음부터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것은 아니다. 2022년 지자체 공모 사업 지원 받아 식당 운영을 시작하며 사업 규모를 확대했지만, 자금난으로 지속적인 운영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일회성에 불과한 지자체 지원만으로는 사업 규모 확대 시 늘어나는 부수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밥을 먹고 돌아가던 한 아이가 “올겨울에도 운영하시나요?”라고 물었을 때, 이 이사장은 “최대한 노력해보겠다”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해 겨울 식당은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지역신문을 통해 사연이 알려지며 창원신협과 효성·로만시스·구구 등 지역기업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230여 명의 개인 기부자와 인근 상인들까지 식재료 지원으로 힘을 보태 이듬해 여름 식당은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지역 간 격차 줄여 돌봄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협동조합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지자체 지원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지숙(사회복지) 교수는 “협동조합을 위한 지원이 단년도·사업비 중심보다는 다년도·운영기반 중심 지원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년 사업비만 지원하는 현재 방식으로 인건비나 공간 확보 같은 기본적인 운영 기반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창원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박소현(30) 과장은 “사업 확대 과정에서 인허가와 시설·위생 기준 등 법적 요건에 따른 추가비용이 생긴다”며 “단계별 지원체계를 마련해 조직을 안정화하고 스스로 수익 창출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합은 식당 인근에 커뮤니티센터와 도서관, 마을 카페를 운영 중이다. 해당 사업을 통해 지역 주민을 위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 일부를 500원 식당의 재원으로 재투자하고 있다.
500원 식당 같은 아동 돌봄 시설 규모의 지자체별 편차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7월 27일 보건복지부는 방학 중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해 전국 마을 돌봄 시설 운영시간을 늘리고 끼니를 제공하는 ‘방학 중 틈새돌봄’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공적 돌봄에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은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였다.
국가아동권리보장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여름방학 틈새돌봄 지정센터는 서울이 295곳인 반면 경남은 13곳에 그쳤다. 경남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인천은 35곳으로 세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또 다른 비수도권 지역인 전남 역시 지자체가 사업을 주도하여 운영하는 다함께 돌봄센터가 3곳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중앙정부가 국고 보조율을 지역별로 차등화하고 부담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자체들은 학교와 지역 돌봄 기관을 연계한 협업 모델로 격차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지난 5월 교육부가 선정한 ‘온 동네 초등돌봄·교육 우수모델' 최우수 지자체인 전남 영광군은 오전엔 학교가, 오후와 저녁에는 지역아동센터가 돌봄을 맡는 역할 분담 체계로 무상 급식을 제공했다. 충남 예산군도 거점학교·마을학교·다함께돌봄센터를 연계해 돌봄 공백을 메웠다.
Epilogue
올여름 500원 식당의 활동은 막을 내렸지만, 조합의 시계는 이미 찬 바람이 불어올 계절을 향해 돌아가고 있다. 이 이사장은 “식당을 이용했던 아이가 대학생의 모습으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찾아온 적도 있다”며 받은 나눔을 다시 베푸는 선한 영향력을 조합의 궁극적인 목표로 꼽았다. 공공 행정이 놓친 복지의 빈틈을 지역과 시민사회가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따뜻한 동행은 다음 계절의 온기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
신정우·배정아·김유림 기자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