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과 요아정, 커스텀의 시대

19. 작은 선택, 확실한 주도권

2026-09-15     이주현 칼럼니스트

 

나만의

배달 앱을 켜는 순간부터 일은 시작된다. 치킨 한 마리를 시키는 데도 뼈와 순살을 고르는 건 예고편에 불과하다. 소스 종류와 사이드 메뉴까지 거쳐야 하는 선택의 방이 수두룩하다. 남이 알아서 딱 알맞은 조합으로 가져다주면 편할 테지만 요즘 우리의 식탁은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조립해야 하는 미션들로 가득하다. 온 세상이 커스텀을 외치는 시대다.

 

대표적인 주자가 바로 마라탕과 요거트 아이스크림이다. 마라탕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사뭇 진지한 연구자로 변신한다. 바구니를 들고 알싸한 국물 속으로 뛰어들 재료들을 직접 선택한다. 쫄깃한 분모자와 넙적 당면, 국물을 머금는 유부와 목이버섯, 숙주까지. 계산대 앞에 서자 바구니 속 금액이 머릿속을 스치며 손끝엔 긴장이 감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벌집꿀, 초코쉘 등 여러 토핑을 담을 때마다 화면 속 가격은 우상향을 그린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정해진 메뉴 대신 이 수고스러운 커스텀의 길을 택할까. 마라탕 바구니를 채우고 토핑을 고를 때 집착하는 것은 맛의 완성도가 아닌 결정권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알랭 에렌베르크는 현대 사회를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피로한 사회’로 진단했다. 취업 준비부터 인간관계까지 내 마음대로 굴러가는 것 하나 없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노력해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성을 견디며 산다.

 

그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사소한 영역인 식탁으로 눈을 돌린다. 수많은 토핑 중 오직 내 취향대로 재료를 조합하고, 매운맛을 0.5단계 단위로 조율하는 과정. 그 찰나의 행위에서 내 삶의 주도권을 오롯이 쥐고 있다는 작고 확실한 쾌감을 느낀다. 타인이 정해준 정답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기보다 내 손으로 삶의 작은 변수를 직접 통제하고 싶다는 욕구가 발현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음식 앞에서 이렇게 진지해지는 이유는 잃어버린 자기 결정권을 가장 맛있는 방식으로 회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복잡하고 유난스러운 커스텀 문화는 오늘 하루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세상에 던지는 가장 유쾌하고 주체적인 자기 선언일지도 모르겠다.

 

 

이주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