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망설이지 않는다, 인간은 함께한다

AI 시대, 중요해지는 인간의 판단 기술이 대신 못할 ‘실감’과 ‘진정성’ 땀·배려, 함께 만드는 스포츠 가치

2026-10-13     변경원 경영대학원 스포츠마케팅전공 주임교수

 

지난 4월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소설가 김애란 작가의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아 있다. 진행자가 AI 사용 경험을 묻자 자료 조사에 쓴다고 답했다. 이어 AI와 고민을 나눈 경험을 떠올리며 “인간한텐 있고 AI한텐 없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망설임이었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손석희 진행자가 고 노회찬 전 의원을 언급하다 약 20초간 말을 잇지 못한 장면을 예로 들었다. 방송에서 20초의 침묵은 방송사고처럼 느껴질 만큼 길다. 그러나 김 작가는 그 망설임에서 우리가 같은 시대를 통과한다는 실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말을 삼키고 상대를 헤아리는 순간에는 배려와 품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AI를 사용하며 이 ‘망설임’과 함께 드는 생각이 있다. AI를 잘 쓰면 일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 자료를 찾고 일을 처리하는 속도는 놀랄 만큼 빨라졌는데, 이상하게도 일이 줄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연구실 불을 끄고 나가는 시간은 더 늦어졌다.

 

과거에는 정보를 찾는 것이 일이었다면 이제는 쏟아지는 정보를 읽고, 고르고, 확인하고, 다시 판단하는 것이 일이 됐다. 어쩌면 우리는 ‘정보를 찾는 노동’에서 ‘정보를 판단하는 노동’으로 이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제는 빨리 끝나도 아낀 시간이 다른 일로 채워지는 ‘일감 잠식(Workload Creep)’ 현상이 나타나고, AI 결과물을 계속 검토하고 감독하는 과정에서 인지적 과부하와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는 ‘브레인 프라이(Brain Fry)’라는 새로운 소진 상태도 보고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고, 버리고, 선택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일 것이다. AI는 수많은 답을 제시하고 선택을 도울 수 있지만, 무엇을 받아들일지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아직 인간의 몫이 크다.

 

전공 분야인 스포츠산업·경영에서도 AI와 디지털 기술은 스포츠를 경험하는 방식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프로야구 관람자는 실시간 경기 정보를 확인하고, AI가 경기 종료 후 5분 이내에 제공하는 득점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으며, 경기장 좌석에서 치맥을 주문한다. 또한 운동 참여자는 러닝의 페이스와 심박수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운동 동작을 분석받을 수도 있다. 기술은 스포츠를 더 잘 보고, 더 편리하게 즐기며, 더 효과적으로 참여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기술은 스포츠 경험의 폭을 넓히고 그 가치를 풍부하게 만들지만, 기술만으로 온전히 대신하기 어려운 스포츠 경험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예를 들면, AI는 효율적인 운동 방법을 알려줄 수 있지만 직접 숨이 차고 땀을 흘리는 일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맞이해 처음 만난 옆자리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터뜨리는 환호의 현장감 역시 AI가 보여주는 영상만으로 온전히 대신하기 어렵다. 또한 팀스포츠에서는 승리 확률이나 개인 기록만 놓고 보면 다른 선택이 더 효율적일 수 있어도, 때로는 자신의 기회를 내려놓고 은퇴를 앞둔 동료에게 마지막 기회를 내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협력과 배려, 희생과 신뢰, 그리고 함께함의 가치를 경험한다. 기술은 편리함과 효율을 높일 수 있어도, 이렇게 직접 겪고 망설이고 땀 흘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실감’과 진정성까지 대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AI 시대에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이 인간을 대신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에게 더 중요해지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누군가를 생각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함께하기 때문에 기다리며, 다른 사람을 위해 때로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것이 인간이다. 스포츠는 그것을 몸으로 보여준다.

 

연구자로서 AI와 디지털 기술이 스포츠 경험과 가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살펴보고 있다. 스포츠산업·경영 분야에서 기술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스포츠 경험의 가치를 높이는 데 힘쓰고자 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땀은 내가 흘려야 한다. 그리고 스포츠의 가치는 여전히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