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도서관에 오히려 기회”… 논증하는 학문은 책 속에

‘자료 디지털화·이용 편의’ 두 축으로 변화 꿈꾼다 콘센트부터 전자책까지, 달라진 세대에 맞춘 도서관 “전문가 검증 거쳐 좋은 책 받고, 버릴 책만 폐기”

2026-10-13     김민수 편집장

대학 도서관의 역할이 시험대에 올랐다. 궁금한 것은 AI에게 물으면 몇 초 만에 요약해 주는 시대에 굳이 도서관을 찾을 이유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공간 문제도 만만치 않다. 80여 년의 역사 속에 쌓인 100만 권 넘는 장서를 어떻게 지키고, 또 어떻게 비워 낼 것인가. 퇴계기념 중앙도서관을 이끄는 서문석 퇴계기념중앙도서관장을 만나 AI시대 도서관의 역할과 장서 운영의 원칙을 들었다.

 

지난

-부임 이후 도서관 운영과 환경 개선에서 가장 중점을 둔 목표는 무엇인가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지고 있는 자료를 어떻게 효율화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더 편리하게 쓸 것인가입니다. 먼저 AI와 AX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는 시대에 맞게, 가능한 자료는 전자책을 우선 선택해 학생들이 온라인으로도 도서관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100만 권이 넘는 장서를 한꺼번에 옮길 수는 없으니 단계적으로 풀어가야지요. 이용 환경도 바꿨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교과서 대신 태블릿과 노트북을 들고 다니잖아요. 멀쩡한 테이블에 구멍을 내는 게 속상했지만 모든 테이블에 콘센트를 설치했고, 열람실의 노트북 사용 제한 규정도 없앴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도서관을 쓰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기존 종이책도 디지털화하나요.

“연구하고 고민 중입니다. 스캔해서 디지털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이용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거든요.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사서 선생님들과 함께 풀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1940~50년대 책들은 책장을 넘기면 부서질 정도라 보존을 위해서라도 서둘러 디지털화해야 하고요.”

 

-학생들에게 이 도서관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제 욕심은 공부방을 넘어 지적 모험을 하는 장이 됐으면 하는 겁니다. 교과서를 보고 외우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사안에 한 걸음 들어가 보면 이런 것을 설명하고, 책을 보면 챕터마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거든요. 그 논리를 따라가며 어떻게 논증해 어떤 결론에 이르는지 살펴보는 것이 모험입니다. 그런 모험을 계속해 봐야 공부할 때도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어요.”

 

-관장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공간이 있다면요.

“도서관을 어떻게 쓰는지 보려고 자주 둘러보는데, 제일 먼저 가는 곳이 6층 정기간행물실입니다. 본관 쪽을 바라보면 광교산, 관악산, 청계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이 병풍처럼 이어져 보여요. 옛 선비들이 명산대천을 다니며 호연지기를 길렀다는데, 이걸 보고 있으면 사소한 일에 빠지지 않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다음에 꼭 가는 곳이 3층 도산 라운지예요. 저는 대학의 본령이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선 누워 있는 학생도 있고 혼자 책을 보거나 대화하고 음식도 먹습니다.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틀을 깨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흐름을 같이 해 보자고 만든 공간인데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 즐거워요.”

 

-AI에게 물으면 빠르게 지식을 요약해 주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I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언어모델, 말 그대로 언어 모델이에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럴듯하게 말하는 겁니다. 파편화된 정보를 끌어모아 그럴듯하게 엮어 줄 뿐 사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요. 반면 도서관의 책들에는 전문가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을 넣는다는 건 스스로 보증하겠다는 뜻이고 그 이름으로 하나하나 논리를 풀어냅니다. 그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게 학문이에요. 전체 맥락 속에서 이야기가 어떤 절차와 순서로 논증되는지 익히는 과정이 곧 문해력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AI 시대에 도서관은 더 필요하고, 오히려 더 큰 기회를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소장량이 적정 수용량의 170%에 달한다고 합니다. 어떤 책들이 이렇게 쌓여 있나요.

“우리 도서관은 1940년대 말에 시작해 8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장충식 전 명예이사장님이 초대 관장을 하시던 때부터지요. 지금 100만 권 정도인데 국내서가 77만~78만 권, 서양서가 17만 권, 동양서가 10만 권쯤 됩니다. 특정 분야에 몰려 있는 게 아니라, 종합대학이다 보니 다양한 학문의 책이 80여 년간 골고루 쌓인 거예요.”

 

-대학 간 연합 보존서고 같은 대안은 어떻게 보시나요.

“한 대학의 도서관은 학생 규모에 따라 크기가 정해져 있고, 건물 하나 짓는 게 보통 예산으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더하겠지요. 학술적 자산으로서의 책을 한 대학이 계속 보존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개별 대학 간 협약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대학 간 연합 보존서고가 추진돼야 한다고 봐요. 대학교육협의회 같은 기구를 통해 중복된 건 정리하고 필요한 건 받아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산을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은퇴를 앞둔 교수님들의 자료를 기증받거나 도서를 폐기할 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시나요.

“자료가 한없이 들어올 수는 없으니 나가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들어오는 길은 구매와 기증인데, 예전에는 어느 대학이나 책 권수를 늘리려고 기증을 다 받았지만 지금은 있는 것도 감당할 수 없다며 받지 않아요. 그런데 교수님들이 은퇴하실 때 남겨주신 도서들을 보면 평생 연구하며 모은, 그 분야 최고 전문가의 컬렉션입니다. 이건 제대로 받아서 관리해야 하죠. 다 받을 수는 없으니 도서관에 없는 책,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책 위주로 목록을 받아 전문가 자문을 거쳐 기증을 요청합니다. 폐기하는 경우 복본이나 파손된 책,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자료 등 폐기 조건에 해당하는 책의 목록을 각 학과로 보내 도서관에 꼭 있어야 하는지, 학과에서 활용할 것인지 확인받습니다. 100권을 버리려 했다면 10권은 폐기하지 않고, 10권은 학과로 보내고, 나머지만 폐기하는 식이에요. 예전엔 없던 절차를 구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기증받은 도서 중 학술적 가치가 특히 높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서 자료실에 가면 일반인이 보기 어려운 자료는 물론 『열하일기』 원본 같은 귀중본도 있습니다. 대량 기증으로는 1985년쯤 일본의 정치철학자 야스오카 마사히로 선생이 책 1만여 권을 기증해 화제였어요. 포항제철 설립을 이끈 박태준 회장이 일본에 협력을 구하러 갔을 때 연결 고리 역할을 한 분으로, 당시 일본 수상들의 멘토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지난해에는 전시 경제체제 연구의 권위자인 야마자키 시로 선생이 900여 권을 기증했고요. 최근 가장 좋은 책을 기증하신 분은 사학과 이재령 교수님입니다. 중국 근현대사를 연구하셔서 예전엔 접하기 힘들던 1차 자료 850~900권을 주셨어요. 앞으로 중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우리 학교에 한 번씩 와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단국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도서관은 지식 탐구의 베이스캠프입니다. 거기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머무는 시간에 따라 대학 생활의 질이 달라질 거예요. 아침에 와서 짐을 풀고 도서관을 중심으로 학교생활을 한다면, 지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훨씬 힘 있고 학문적인 대학 생활을 하며 많은 자산을 얻게 될 겁니다. 우리 지역 사회에 학교가 기여하려면 도서관이 지역 사회의 거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총장님이 ‘학생이 만족하는 대학’을 말씀하셨는데, 그 만족이 시작되는 곳이 도서관이었으면 합니다. 학생들이 아침의 시작을 도서관에서 하셨으면 좋겠어요.”

 

서

‘경제사 학자’ 도서관장의 마음

책 한 권 한 권을 아끼며 도서관을 지킨다

경영경제대학 학장을 겸임하고 있는 서 도서관장은 경제사를 전공한 경제학과 교수다. 우리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도 단국대학교에서 나온 서 도서관장은 학생 시절부터 도서관에 가진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그가 연구하는 1960년대 이전 자료는 도서관에 와야만 볼 수 있었다. 이 도서관에서 받은 도움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폐기를 앞둔 책 앞에서 몇 번이고 확인하던 그는, 장서를 모으고 비우는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다른 내용은 줄이더라도 도서를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폐기하는지는 꼭 잘 설명해 달라고 당부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더 잘 활용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민수 편집장 epicviolet0216@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