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쟁 길어질수록 시장 멀어진다

2026-10-13     단대신문

새 스마트폰에 아무리 좋은 메신저 앱을 깔아 놓아도 친구들이 모두 카톡 채팅방에 있으면 결국 다시 카톡을 열게 된다. 아무리 더 좋은 기능을 가진 메신저가 나와도 별 소용이 없다. 친구들은 모두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이‘단체 채팅방’이 떠오른다. 화폐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이 특정 화폐를 쓰기 시작하고, 그 사용이 늘어날수록 어느 순간 그것은 하나의 표준이 된다. 우리가 논쟁하는 사이 세계의 금융 단톡방이 디지털 달러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테이블코인은 이름 그대로 가치가 안정되도록 만든 코인이다. 대표적인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1코인을 1달러와 바꿀 수 있도록 달러 예금이나 미국 국채 등을 준비해 놓고 발행한다. 쉽게 말하면 블록체인이라는 인터넷 도로를 타고 24시간 움직이는‘디지털 달러’를 만든 것이다.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CBDC와 다르게 민간회사가 기존 화폐를 담보로 발행하는 지급수단이다. 비트코인이 새로운 돈을 만들겠다는 실험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돈에 디지털 날개를 달아주는 쪽에 가깝다.

 

미국은 지난 2025년 7월 ‘GENIUS Act(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를 제정해 지급형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준비자산, 감독체계 등에 관한 기본 틀을 마련했다. 미국 재무부도 스테이블코인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강화하고 미국 국채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미국 정부가 적극 나서 달러에 인터넷용 여권을 발급해 주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해외송금과 온라인 쇼핑, 디지털 자산 거래에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쓰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에는 우연히 쓰게 되더라도 한번 익숙해지면 편리해서 다시 쓰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쓰니 나도 더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코인’이 아니라 세계 디지털 화폐의 표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야 하는지, 은행 중심으로 할지 핀테크 기업에 얼마나 문을 열지,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어디까지 관여할지 등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을 걱정하고, 금융위원회는 지나친 규제가 혁신을 막고 시장을 해외 사업자에게 내줄 가능성을 우려한다. 양쪽 모두 일리가 있다. 문제는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도대체 얼마나 더 오래 논쟁할 것이냐이다.
물론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미래의 승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최근 BIS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대규모 지급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장의 성공이 아니라, 앞으로 디지털 화폐 결제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더라도 우리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하루빨리 시장에 뛰어들어 경험을 쌓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가장 위험한 전략은 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논쟁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 달러가 세계 스테이블코인 결제시장의 표준이 된다면, 뒤늦게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든다고 해도 사람들이 옮겨올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이미 모두 들어가 있는 단체 채팅방을 떠나 새로운 채팅방으로 옮기라고 설득하는 것과 같다. 미래 화폐의 경쟁력은 금리와 환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느 돈이 더 쉽게 국경을 넘고, 더 많은 플랫폼에서 쓰이며, 사람들의 휴대전화 안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지 역시 중요해질 것이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정치권 모두 서로의 우려를 충분히 듣되 이제는 방향을 정할 때다. 세계의 금융 단톡방이 완성되기 전에 우리도 방 하나쯤은 만들어 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