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권리 존엄사…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삶의 마지막 권리 존엄사…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 박소영·배정아·김혜인 기자
  • 승인 2026.09.01 10:45
  • 호수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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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중단 320만… ‘의사조력자살’ 논의 확산
전문가들 “연명의료중단과 자살조력은 별개”
“존엄한 죽음 이전에 존엄한 돌봄부터 갖춰야”

 

일러스트=맹수영 기자

“응답자 1021명 중 82%가 조력 존엄사에 찬성한다.”


202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다. 찬성 이유로 무의미한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점을 꼽았다. 반면 생명을 경시할 위험 등 윤리적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로 시행 8년 차를 맞은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지만, 의사의 도움으로 환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의사조력자살은 허용하지 않는다. 자기 결정권과 생명의 가치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표=맹수영 기자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듯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바탕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서약 등록자는 법 시행 첫해인 2018년 8만7000명에서 작년 320만2000명으로 급증했다.

 

‘금기’에서 ‘법’으로 한국의 변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존엄사’는 한국 사회에서 법·윤리적 금기에 가까웠다. 대표적인 사건이 1997년 발생한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당시 뇌출혈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가 배우자의 요청으로 퇴원한 뒤 숨지자, 검찰은 의학적 판단이 아닌 보호자 요구에 따라 퇴원시켰다는 이유로 의료진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2004년 대법원은 살인방 조죄로 의료진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이후 병원들은 환자 가족이 치료 중단이나 퇴원을 요구해도 거부하는 쪽을 택하게 됐다.

 

흐름이 바뀐 것은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이다. 과다 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77세 김 할머니는 1년 4개월간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의료를 받았다. 김 씨 가족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며 소송과 헌법소원을 함께 냈다. 2009년 5월 대법원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며 연명치료 중지를 받아들였다.

 

이 판결을 거쳐 2016년 1월 연명의료 결정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어 2018년 2월부터 시행되며 한국에서 존엄사를 법적으로 가능하게 제도권 안으로 들였다. 다만 물·영양분 공급이나 산소 공급은 제외한 채,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수준에 대해서만 한정한다.

 

그러나 현행 연명의료중단이 소극적 조치에 머물러 환자가 오랜 시간 겪어야하는 극심한 고통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이런 지적에 힘입어 2024년 7월 국회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으로 치사 약물을 처방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했고 현재 계류중이다. 그러나 정작 전문가들은 법안의 이름부터 문제 삼는다. 존엄사는 본래 회복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경우에 한정해 사용된 말이지만 스스로는 삶을 끝내는 행위까지도 존엄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의다.

 

“자기 결정권과 죽을 권리는 달라”

원래 ‘존엄사(소극적 안락사)’는 1975년 미국의 ‘캐런 퀸란 사건’ 이후 회복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경우에 한정해 사용된 용어다. 당시 21세였던 캐런 퀸란은 술과 약물을 함께 복용한 뒤 장기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부모가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지만 병원이 거부해 소송으로 번졌다. 이듬해 법원 판결로 호흡기를 뗀 뒤에도 그는 9년을 더 살다 1985년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존엄사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 환자에게만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의사가 약물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끝내게 하는 것은 ‘의사조력자살’, 약물을 직접 투여하는 것은 ‘적극적 안락사’로 엄연히 구분된다. 

 

이석배 (법학) 교수는 현행 논의의 개념적 오류를 지적한다. 이 교수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은 원래 침습적 치료를 거부할 권리이지 죽을 권리가 아니다”라며 “학계에서는 개념 혼동을 이유로 존엄사라는 표현 자체를 지양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행법이 적용 대상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지나치게 좁게 규정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정작 자기 결정권이 절실한 시점에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한 “의료비 걱정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채 법부터 만들어지면 국가가 나서서 국민에게 자살 을 강요하는 최악의 입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기 결정권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국가마다 갈린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법제화한 뒤 그 범위를 계속 넓혀왔다. 2024년에는 치료 방법이 없고 극심한 고통을 겪는 1~11세 말기 환아도 엄격한 조건 아래 안락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고, 작년 말 이 규정에 따른 첫 사례가 보고됐다.

 

스위스는 적극적 안락사를 촉탁살인죄로 처벌한다. 다만 의사조력자살은 형법 제115조에 따라 이기적 동기에 의한 자살방조만 처벌해 이타적 목적의 조력자살은 사실상 허용된다. 별도 허용 법률 없이 형법 해석만으로 비범죄화한 것이다. 따라서 돕는 사람이 반드시 의사일 필요도, 조력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스위스 국적자일 필요도 없다. 스위스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조력자살자는 2087명으로 일반적인 자살 사망자의 2배 가까이 된다.

 

미국에서는 오리건주가 1994년 제정한 ‘존엄사법’이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 첫 사례다. ‘존엄사법’은 6개월 이내 사망이 예상되는 18세 이상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증인 2명 앞에서 서명한 약물요청서를 주치의에게 전달하면 조력자살에 대한 자발적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간주한다.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워싱턴주·버몬트주 등 13개 주와 특별 구인 워싱턴DC가 의사 조력자살에 관한 법을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존엄사를 바라보는 종교계의 시선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이하 한생협)는 의사조력자살 합법화에 명확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생협 이길찬 사무총장은 “기독교 생명윤리는 인간 생명의 고유한 가치를 강조한다”며 “환자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명 자체를 제거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연명의료 중단과 의사조력자살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했다. “연명의료 중단이 죽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멈추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의사조력자살은 의사가 제공한 약물로 사망 시점을 앞당기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의 생명을 의도적으로 종결하지 않으면서도 고통을 최대한 완화하고 임종까지 돌봄을 이어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한편 불교계 일각에서는 보다 유연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대한불교조계종 일윤스님은 “불교에서는 무엇보다 행위의 의도를 중요하게 본다”며 “회복 가능성이 없고 지속적인 고통을 겪으며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면 의사조력자살도 자비의 관점에서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윤 스님 역시 “전통적인 불교 입장에서는 허용하기 어렵지만 현재의 의료 환경을 고려한 해석”이라며 “사회적 약자가 가족이나 사회의 압력으로 원치 않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과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존엄한 죽음보다, 존엄한 돌봄

 

표=윤현서 기자

전문가들은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상태에서 의사조력자살이 도입될 경우, 돌봄 취약계층이 사실상 ‘죽음을 강요받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작년 한국리서치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말기 환자가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93%, ‘무조건적인 생명 연장은 옳지 않다’는 응답이 91%에 달했다. 나아가 54%의 응답자가 존엄사로 인한 생명 경시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공감대는 뚜렷하나,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있다.

 

허대석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네덜란드·벨기에·캐나다는 연명의료결정과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충분히 자리 잡은 뒤에야 조력 자살 제도를 논의했다”며 현행법의 적용 기준이 사망 며칠 전인 ‘임종 과정’으로 너무 늦게 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체계가 미비한 상태에서 의사조력자살을 법제화하는 것은 취약계층을 사회적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력자살의 법제화에 앞서 필요한 것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만을 논의하는 일이 아니다. 성문화한 국가들 역시 제도 도입을 이루기 전 의료와 돌봄의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도 이에 앞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논하기 전에, 삶의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조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박소영·배정아·김혜인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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