統一大韓民國의 꿈을 안고 달렸다
統一大韓民國의 꿈을 안고 달렸다
  • 권용우
  • 승인 2014.11.1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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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一大韓民國의 꿈을 안고 달렸다

 

권용우

(명예교수 ․ 법학)

 

8월 13일(이하, 현지 시각), 독일통일의 상징인 베르린(Berin)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문앞 광장에서 통일대한민국(統一大韓民國)의 꿈을 안고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대장정(平和大長征)’ 출정식이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는 한국과 독일 양국의 여야(與野)와 보수 ․ 진보가 모여 손잡고, 한반도(韓半島)의 통일을 염원했다. 오랜만에 보는 흐뭇한 장면이었다.

 

保守와 進步, 平和와 統一을 염원하다

 

원정대(遠征隊)는 태극기(太極旗)를 휘날리며 이 날로부터 96일간 폴란드 ․ 발트 3국 ․ 러시아 ․ 카자흐스탄 ․ 몽골 ․ 중국을 거쳐 서울까지 1만5천km를 달렸다. 많은 독일 국민과 우리 교민들의 격려와 박수 속에서 출발한 원정대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꿈을 안고 힘차게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이 날 영상 축하메시지를 통해 “이번 대장정을 통해 우리 국민이 통일시대의 비전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고, 유라시아 각국에도 소통과 협력의 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또, “오랜 단절을 넘어 소통과 화합의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고 대륙 전체를 하나의 경제권과 생활문화권으로 만들어간다면 인류의 공동발전과 행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특히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출발점이자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관문인 우리나라가 통일을 이뤄서 대륙과 직접 연결이 되는 길을 열 수 있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동북아와 세계에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덧붙혔다.

 

필자는 TV를 통해 원정대(대장 : 김창호) 출정식을 지켜보면서, 해외출장 중 서독(西獨) 베르린에 머물던 1990년 2월 20일 허물어지고 있는 베르린장벽을 둘러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한반도의 155마일 휴전선(休戰線)도 머지 않아 무너지겠구나’를 속으로 되내었다. 그 때, 많은 동독인(東獨人)들이 줄지어 서독으로 관광 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의 승리구나’라는 혼잣말을 했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문득, 미국 제35대 대통령 케네디(Kennedy, J. F. : 1917~1963)가 대통령 당선 직후 서독을 국빈(國賓) 방문 기간 중 베르린장벽을 둘러보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베르린장벽이 아무리 높아도 인간의 자유에 대한 동경은 막아내지 못한다.” 참으로 귀한 말이었다.

1987년,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레이건(Reagan, R. W. : 1911~2004)도 브란덴부르크문을 가린 베르린장벽 앞에서 연설하면서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Gorbachev, M.)를 향하여 “진정 평화와 자유를 추구한다면 이 문을 열고, 이 장벽을 허물어버려라”라고 말했는데, 이는 우리에게 귀에 익은 말이다.

1989년, 콜(Kohl, H.) 서독 총리와 모드로(Modrow, H.) 동독 총리가 웃으면서 악수함으로써 브란덴부르크문이 열리고, 독일 통일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

다.

 

이제 155마일의 休戰線을 열자

 

원코리아 뉴라시아의 자전거 평화대장정이 한반도를 가로지른 155마일의 휴전선을 여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지난 8월 13일 브란덴부르크문 앞을 출발한 원정대는 22일 제2차 세계대전(世界大戰)의 상처를 씼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Warszawa)에 도착했다. 제1구간 751km를 달려왔다. 그리고, 우리 원정대원들은 자전거로 폴란드 땅을 달리면서 주변 강대국에 시달리면서 고난의 역사 속에서 살아야 했던 폴란드 국민들을 떠올리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느꼈으리라. 대원들은 바르샤바에 머물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서독(西獨)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의 부조상(浮彫像)을 바라보면서 경색된 한일(韓日) 관계를 떠올렸을터다. 27일 저녁에는 라트비아 수도 리가(Riga)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한 ․ 라트비아 친선의 밤’이 그것이었다. 6인조 여성합창단 ‘라트비안 보이스(Voices)’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열창하면서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대원들을 맞았다고 한다. 대원들의 감회가 어떠했을까?

9월 4일에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브르크(Saint Petersburg), 10일에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Moscow)를 거쳐 15일 우랄(Ural) 산맥을 넘어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왔다. 그리고, 23일에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Astana)에 도착해 우리의 핏줄 고려인(高麗人)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러시아의 연해주(沿海州)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이 곳으로 강제 이주 당하여 오늘까지 살아온 인고(忍苦)의 세월을 말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랴.

10월 15일, 원정대의 자전거 평화대장정은 쉼 없이 평화와 통일을 외치면서 1만268km를 달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Ulaanbaatar)에 도착, 칭기즈칸(Chingiz Khan) 동상 앞을 지났다. “칭기즈칸은 칼과 활을 들었지만, 우리는 평화의 깃발을 들었다”고 한 김창호 대장의 말이 필자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들 원정대의 앞길에는 때로는 바람이, 때로는 비와 눈이 가로 막았지만, 그 무엇도 그들의 열정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이들 원정대는 몽골의 넓게 펼쳐진 초원을 가로질러 10월 23일에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도착했다. 이들이 밟은 페달의 누적거리 1만1,713km였다. 그리고, 그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안고 달렸다. 29일, 원정대는 중국 단둥(丹東)에서 압록강 건너편 북한 땅 신의주(新義州)를 바라보면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압록강 건너 북녘 땅’을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을텐데. 대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눈덮힌 백두산(白頭山) 주변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통일의 염원이 더 간절했으리라.

 

11월 16일, 96일간 1만5,000km를 달린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원정대’가 늠름한 모습으로 서울에 입성했다. 이로써 8월 13일 독일 베르린을 출발한 자전거 평화대장정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참으로 장하다.

이들 원코리아 뉴라시아 원정대원들은 자전거 동호인 1만명과 함께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마지막 라이딩(riding)을 펼치면서 ‘통일대한민국’을 소리높혀 외쳤다. 평화와 통일의 꿈을 안고 달린 1만5,000km의 대장정! 2014년 11월 16일, 참으로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우리 모두 원정대원들에게 박수를 보내자.

권용우
권용우

 lawkw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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