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德培, 社會法의 土臺를 쌓다

권용우l승인2015.03.07l0호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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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德培, 社會法土臺를 쌓다

 

권 용 우

(명예교수 법학)

 

지난 215일은 박덕배(朴德培) 교수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는 198421576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났다. 2015215일은 그의 31주기(週忌)가 되는 날이었다.

宗敎, 그리고 그의 삶

(1) 박덕배는 19081115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에서 태어나 이 곳 서당(書堂)에서 한학(漢學)을 배우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나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참으로 암담한 때였다. 1905년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고 일본에게 우리의 외교권(外交權)을 빼앗긴 때이어서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과 같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에게는 부지불식간에 조국(祖國)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召命意識)을 싹 틔워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1933년 사리원(沙里院)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에 입학하여 새로운 학문을 익혀가면서 내일에의 꿈을 키워갔다. 1937,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더 넓은 세상에서 자기수련을 위하여 외국유학을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북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 법문학부에 진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를 힘겹게 살아야 하는 그에게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금융조합(金融組合) 등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놓고 많은 고민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문득 대학재학시절 일본인 학생들이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조선인(朝鮮人)이 기껏해야 도지사(道知事) 밖에 더 하겠는냐.” “그렇다면,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그래서, 그가 선택한 길은 교육이었다. 그의 이러한 선택의 기저에는 교육을 통해서 선량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애국(愛國)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 위에서 쓴 논설이 한국사회개혁의 기체로서의 인간성”(교육과 사회 제2, 1956.)법학의 사회생활과적 교육임무”(교육 제11, 1961.)가 그것이다.

(2) 그런데, 박덕배는 독일의 법철학자 겸 형법학자 라드부르흐(Radbruch, G.)의 저서 법철학입문(Vorschule der Rechtsphilosophie, 1948.)을 읽고, 종교(宗敎)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박덕배 법학의 사회생활과적 교육임무”). 그는 그 이후에도 라드부르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법사상(法思想)의 형성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19605월에 발표한 “Radbruch법률을 초월한 법률에 대한 나의 관견”(단대신문 1960. 5. 1.)“Radbruch법을 넘어선 법에서 나는 신()과도 같은 법의 사상을 읽을 수 있었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법의 본질은 인지(人智)를 초월한 위대한 힘, 즉 신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젊은 학생들에게 삶을 일깨워주는 글에서도 Radbruch를 예로 들고 있다. 그 예로 무엇을 할 것인가!” - 제군의 어깨에 조국과 세계가 달려있다(단대신문 1960. 7. 21.)학생에게 고한다”(단대신문 1961. 4. 1.)이 그것이다.

, 그는 민족의 위기와 청년”(단대신문 1963. 9. 15.)이라는 글에서도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신앙’ - ‘종교는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지주(支柱)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신앙인으로서의 종교뿐만이 아니라 법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종교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법의 성립근거로서의 종교, 법의 본질을 이해하는 조력자로서의 종교, 법사상을 이해하는 기초로서의 종교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박덕배 법률학개론). 그런데, 이는 독일의 세계적인 법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법의 형식적 의미나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변천하는 사회의 실정에 즉응하는 법규의 해석 적용을 의도한 것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社會法의 싹을 틔우다

(1) 학자로서의 박덕배는 법철학자요, 사회법(社會法, 그 중 勞動法) 학자였다. 그는 광복(光復) 후 우리나라의 제1세대의 노동법 학자였다.

그는 1948년부터 1957년까지 단국대학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는데, 초임교수 때에는 법철학 등을 강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1955년에 비로소 법학과의 교과과정에 사회법과 법률사상사가 개설되었는데, 이 때부터 법철학과 사회법 법률사상사 등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195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과로 옮겨갔으며, 1974년 정년퇴임때까지 교수직에 머물면서 노동법 학자로 자리를 지켰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과에 재직하는 동안 강의의 편의를 위해 법철학개론(문천사, 1964.)법률학개론(문천사, 1976.)을 출간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사회법 또는 노동법 강좌가 최초로 개설된 것은 1948년 고려대학교에서였으며, 윤종섭(尹鍾燮) 교수로 알려져 있다(박덕배 한국사회법학 30년의 회고”). 그리고, 이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후에 다른 대학에서 사회법, 노동법 또는 경제법(經濟法) 강좌가 개설된 것으로 짐작된다.

, 사회법, 노동법 또는 경제법이 언제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법률잡지 등에 나타난 것을 보면 1960년 초부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컨대, “경제법조성에 관한 일고”(김치선, 서울대 법대학보 제4, 1957.), “노동법학계의 회고와 전망”(이항녕, 법정 1960. 1.), “사회법과 그 입법경향”(정범석, 건대학보 제6, 1960.), “사회법의 개념”(김여수, 성균관대 논문집 제6, 1961.), “한국노동위원회의 문제점”(김형배, 고려대 법행논집 제4, 1963.), “사회법의 이론적 전개”(김영철, 충남대 논문집 인문사회과학편, 1965.) 등이 있다.

그리고, 1960년의 법률학강의총서로 경제법 사회보장법(김치선, 법문사)이 출간되었는데, 이는 경제법 사회보장법이 사회법의 영역에 속하는 새로운 학문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외국의 각종 경제법과 사회보장법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가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발전됨에 따른 새로운 입법을 예견하고 있어서 주목되는 바 있었다.

(2) 그런데, 박덕배는 위에 예시한 논설이나 저서보다 앞선 1956년에 사회법서설과 노동법(민중서관)을 출간하였으며, 1958년에는 사회법원론(단국대)를 출간한 바 있다. 그리고, 1964년에는 김진웅(金辰雄, 고려대 교수)과 공저로 노동법(일신사)을 출간하여 초기 우리나라 사회법 내지 노동법 연구에 토대를 쌓았다.

그리고, 그는 1950~1960년대에 노동법 관련 논설을 많이 발표하였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협약의 노동법적 성격()”(단대신문 1958. 4. 21.), “협약의 노동법적 성격()”(단대신문 1958. 5. 1.), “한국노동운동의 Charismatiche Autoritἃt와 그 전망”(단국대 법학논총 제2, 1959.), “노동협약의 법원성” : 계약과의 비교에서(단국대 단원 제2, 1959.), “노동협약상의 Unabdingbarkeit에 대한 소고”(단국대 법학논총 제3, 1960.), “법효력론에서 본 노조의 성격”(단국대 단원 제3, 1960.), “노동생산물에 대한 소고”(서울대 상학논총 제1, 1960.), “교원노조문제를 해결할 법리적 기초”(서울대 대학신문, 1960. 10. 17.), “노동위원회는 사회적 정당성을 기저로 하여야 한다”(법제월보, 1963. 9.), “교원노조사건은 또 다시 없어야 한다”(서울대 대학신문 1963. 10. 21, 28.), “노동쟁의의 허가제는 있을 수 없다”(서울대 대학신문 1964. 3. 9.), “향약의 노동법적 연구”(문교부 학술연구조성비에 의한 연구보고, 1968.) 등이 그것이다.

그는 1970년대에 들어서도 쉼 없이 노동법 관련 논설을 발표하였다. “노동협약의 법적 성격에 관한 고찰”(서울대 연구논총, 1971.), “노동력 동원의 의의와 내용” - 국가방위와 근로동원의 문제점(노동공론, 1972.), “단체협약과 사전협의제 단체교섭”(노동공론 1979.) 등이 그것이다.

박덕배의 이러한 사회법 또는 노동법 관련 저서와 논설은 한국법학의 초기단계에 발표된 것들로서, 이로써 우리나라 사회법 내지 노동법의 싹을 틔운 것인 동시에 이 분야의 연구자들의 길잡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1956년에 출간한 사회법서설과 노동법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법 내지 노동법 저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그 당시 우리나라의 법학계는 1945년 광복으로 인하여 일본인 법학교수들이 비운 자리를 메워야 하는 실정이었으므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한다면 사회법서설과 노동법은 사회법 내지 노동법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에게는 나침반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박덕배는 1948년부터 1974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면서 강의와 연구, 그리고 저술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사회법 내지 노동법의 토대를 이룩한 위대한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권용우  lawkw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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