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함께하는 인생의 기쁨과 슬픔
커피와 함께하는 인생의 기쁨과 슬픔
  • 조원진 작가
  • 승인 2021.03.10 01:57
  • 호수 14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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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커피 내리기의 쓸모

대학에 합격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막연하게 자신감을 채워줬고 첫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내 마음대로 세상을 살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찾아간 곳은 중학교 때부터 주말마다 커피를 마시러 갔던 단골 카페였다. 점장님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커피 수업을 해주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말 이틀 동안 꼬박 수업을 들었고, 첫 월급을 탈탈 털어 커피용품을 구매했다. 하지만 직접 커피를 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주전자가 무거워서인지 손은 바들바들 떨렸고, 수업 때 메모했던 내용을 찾으며 커피를 내리느라 실수를 연발했다. 생각해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커피를 내리는 일만이 아니었다. 수능이 인생의 가장 큰 산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보다 수없이 높고 가파른 산을 만나며 어른이 되는 일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 따뜻한 햇살과 커피 한 잔
▲ 따뜻한 햇살과 커피 한 잔

학교에 다닐 땐 학점과 군대가 큰 걱정거리였는데 졸업과 제대를 마치고 나니 고단한 취업 준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회사원이 됐지만, 직장은 악당들의 집합소와 같아서 매일같이 전투하는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커피를 추출하는 실력은 꽤 진보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인데, 매일 사 먹는 커피값을 아낄 수 있다는 점 말고도 꽤 쓸모가 있는 기술이었다. 요약하자면 인생의 고난이 몰려오는 언덕배기에서 커피 한 잔으로 지름길을 찾아낸 기분이랄까. 잠시 그루터기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에 기대면 고단한 것 같은 인생도 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커피는 나에게 관계를 풀어나가는 열쇠와도 같았다. 커피 한잔하자는 사람에게 매몰차게 거절을 놓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는 술과 밥보다 저렴하다. 시간이 없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쭉 들이켜면서 대화를 나눠도 되고, 아니라면 따뜻한 커피 한 잔 두고 식을 때까지 천천히 마시면 된다. 그러니 누군가와의 대화가 절실하거나 관계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 때는 커피만 한 것이 없었다. 당차게 입사했던 첫 직장이 쫄딱 망했을 때의 일이다. 어떻게든 기회를 마련하려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그들에게 커피 한 잔 마시자는 말 덕분에 취직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휘몰아치는 절망 속에서도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결국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 이야기를 가득 담은 소개서로 식품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꼭 심각한 상황에서만 커피가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입생 환영회부터 신입사원 환영 회식까지 20대의 많은 순간은 낯선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어색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커피 이야기를 꺼내 주변을 환기하곤 했는데 마치 타로점을 보거나 카드 마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느낌이었다. 동기들과 엠티를 가서나, 친구들과 캠핑을 하러 갈 때도 커피 내리는 일은 내 몫이었다. 모름지기 어른이라면 커피 없인 하루를 보낼 수 없는데 내가 가진 최고의 기술로 커피를 내려 대접하면 웃음을 짓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몸속으로 빠르게 퍼진 카페인이 모두의 몸과 마음을 달래줬기 때문이다.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 시간과 공을 들여 많은 것을 배웠지만, 커피 내리기만큼 오랫동안 쓸모 있는 기술은 없었던 것 같다. 커피는 재배 지역과 환경에 따라, 로스터의 성향에 따라, 추출 환경에 따라 그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다. 아직 내가 맛보지 못한 커피들은 도처에 널렸고 숨어있는 맛을 찾는 일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준다. 다른 취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이렇게나 큰 기쁨을 주니 어찌 나누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그리해 앞으로 남은 연재를 통해 이 쓸모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방법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이 글을 통해 단 한 명이라도 커피의 기쁨을 마주치길 바라며.

조원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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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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