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우리의 친구일까 적일까
술은 우리의 친구일까 적일까
  • 송새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27 16:56
  • 호수 14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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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근시 이론
▲ 분위기에 취해 술이 과해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 분위기에 취해 술이 과해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술은 우리 삶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해왔다. 즐거운 파티 자리에서든 슬픔을 위로해야 하는 자리에서든 술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우리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술은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수많은 사건 사고의 원인이 된다. 맨정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고는 다음 날 이불킥을 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대체 이 알코올이 무슨 일을 벌이길래 이렇게 평소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술은 사람을 근시 상태에 놓이게 한다. 가까이 있는 현재는 더욱 부각되고 이외의 것들은 모두 흐리게 만든다. 심리학자인 클로드 스틸과 로버트 조지프스는 술이 정서적·정신적 시야를 좁힌다는 의미로 이를 ‘근시 이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한 사람이 현재 클럽에 있다면 내일은 없는 것처럼 신나고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창밖을 보고 있다면 우울감의 끝에 허우적댈 수 있다. 분명 동일 인물이지만 술에 취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재의 감정과 정서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멀쩡한 상태에서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다양한 것을 고려한다. 이 행동을 하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이고, 그에 따라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그 상대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거나 혹은 바람직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술이 근시 상태를 만들면 현재만이 선명하게 남기 때문에 지금 당장 눈앞의 욕구가 더 또렷이 보이게 된다. 다음날 피곤할 줄 알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대범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취한 상태에서는 ‘남이 생각하는 객관적인 나’와 ‘내가 기대하는 나’ 사이에서 후자가 승리한다.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더 또렷하기에 그게 진짜라고 믿는다. 실제의 나 따위는 이미 흐릿한 배경이다. 이렇게 술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조차도 바꿀 수 있다.


취중 진담이라는 말도 정설로 믿으면 안 된다.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술의 특성을 빌어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용기 내 꺼낼 수는 있다. 하지만 ‘취중진담’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나 불안해할지 모를’ 정도로 만취한 상태라면 그 당시의 감정에 과몰입된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합리적이다.


적당한 술자리는 관계를 가깝게 해주고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주지만 조금만 과해지면 수많은 이불킥과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한다. 술 한 잔에 용기를 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지 모르나, 자칫 경계를 잘못 넘으면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우리는 술이 흡수되고 뇌에 영향을 미치기까지의 단계를 눈으로 낱낱이 볼 수 없기 때문에 술이 과해지는 수준의 경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래서 늘 경계해야 한다.


술을 친구로 둘지 적으로 둘지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경계선을 지킬 자신이 있다면 술은 희비를 함께할 좋은 친구가 돼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결국 ‘순간’을 사는 사람으로 만드는 무섭고 달콤한 적이 될 것이다. 술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착각이다. 술을 마시면 대범해지는 사람은 진짜 내가 아니다. 언제든 알코올이 주는 마법에서 깨어나면 연기처럼 사라질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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