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은 어떤 술을 마셨나
조선의 왕은 어떤 술을 마셨나
  • 명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04 14:29
  • 호수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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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향온주와 감홍로
▲은솥으로 소주를 내리는 모습 출처: 세미원
▲은솥으로 소주를 내리는 모습 출처: 세미원

예전에 루이 14세가 즐겨 마셨다는 지역의 와인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피노누아 품종 와인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일지 모르나 이렇게 와인은 맛을 뛰어넘는 유명 인물과 역사와 관련된 화려한 이야기가 많다. 이러한 와인 문화는 맛 이상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흔히 술을 빚는 곳은 양조장이라고 부른다. 왕이 있는 궁궐에서는 그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조선 시대에 사온서(司署)로 불렸다. 이 사온서를 관할하는 곳은 내국으로 즉, 궁중의 의술과 약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술에 의술을 담아 소중하게 약처럼 빚어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의원에서는 어떤 술을 빚었을까? 현재 이 술을 빚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9호 박현숙 명인이 있다. 박 명인은 내국에서 빚던 술인 향온주(香酒)의 전승자다. 향온주의 어원을 보면 문화적으로 어떤 술인지 알 수 있다. 향기 향(香)에 어질 온, 또는 빚을 온을 썻다. 어진 자의 향이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도 하며, 무엇보다 내국을 거느리고 있는 궁중의 관청이자 술을 빚는다는 의미가 크다. 어진 자의 향이 있는 궁중의 술이란 뜻이다.


이 술은 술 발효를 시켜주는 누룩에 녹두를 넣어 같이 발효시켰다는 것으로 향온곡(香)이라고도 부른다. 술을 빚을 때 녹두를 잘 넣지 않은 이유는 단백질 함량이 많아 조금만 잘못하면 쉰내가 나고 발효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궁궐에서는 손이 가는 술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또 실학 서적 신농유약(神農遺藥)에는 궁중에서 빚는 술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술 이름은 감홍로(甘紅露)로 연 씨(蓮子)와 찹쌀, 누룩 등을 재료로 연꽃 술을 빚은 후, 그 술과 함께 다양한 약재를 넣고 증류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은솥을 이용해 증류했다는 것이 기록됐다. 


이런 궁중의 술을 빚는 사온서는 현재 종로구 적선동 정부서울청사 뒤에 그 터만 남아있다. 사라진 궁중의 술 기관 사온서, 그리고 해독작용의 녹두와 독성분을 알 수 있는 은솥으로 증류했다는 조선 왕실의 술 문화. 언젠가 이렇게 빚은 술이 세계적인 경매에서 멋진 가격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다만 그러려면 우리가 더욱 이런 문화를 찾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문화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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