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시간은 왜 빨리갈까?
어른들의 시간은 왜 빨리갈까?
  • 송새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23 14:26
  • 호수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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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

‘10살 땐 시간이 10km로 가고 70살 땐 70km로 간다'는 말이 있다. 나이에 따라 체감하는 시간이 빨라지는 것을 시속에 비유한 말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신기하게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시간이 안 간다'고 말하고 어른들은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한다.


이런 속도 차는 시간의 ‘의미’에 따라 생긴다. 시간에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과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 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인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객관적인 시간을 말하고,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의 시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시간을 말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바꿀 수 없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아이들의 시간은 어른들에 비해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나이가 어릴수록 어른들보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이 많아 일상이 새롭고 다채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상대적으로 이미 해본 것들이거나 혹은 다른 경험을 통해 예측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이런 일들은 그다지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잘 기억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의 시간은 한 게 없는데 빨리 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객관적인 시간은 24시간 똑같이 주어지지만, 카이로스의 관점에서는 아이들의 시간이 더 꽉 차 있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담은 책인「시간은 왜 흘러가는가」의 저자 엘런 버딕(Alan Burdick)은 ‘시간이 어쩜 이렇게 빠르지?’라는 말은 사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함축한 듯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이유에서건 기억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처럼 시간이 ‘너무 안 가게' 느끼기 위해서는 기억할 만한 일들이 삶에 많아야 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한 경험으로 채우도록 하자.

작년 오늘을 기억해 보자. 일 년이 지난날을 뚜렷이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다. 캘린더를 찾아보거나 일기장을 뒤져 어떤 단서를 발견한 뒤에야 가까스로 떠오를까 말까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식을 떠올려 보자. 졸업식은 굳이 일기장을 넘겨 보지 않아도 떠올리기 어렵지 않다.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한 날을 잘 기억한다. 한 해가 간 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아쉬워하며 가는 세월을 탓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성인이 된 지금, 아이들처럼 새로운 경험으로 날마다 채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억할 거리가 많은 삶을 만들어 볼 만하다.


평소에 하지 않던 취미도 좋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좋다.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해서 꼭 대단히 특별해야 하는 건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주 약간 새롭고 다른 경험이면 충분하다.

먼 훗날 삶을 뒤돌아봤을 때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나이를 이만큼 먹었다’며 허무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꽉 찬 인생에 가슴 벅차오르도록 지금 순간순간을 의미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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