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막은 뭐라고 불렀을까
한국의 주막은 뭐라고 불렀을까
  • 명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02 17:32
  • 호수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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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객줏집, 목로집 등

한국의 지역 술을 맛보러 지방을 내려가면 늘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음식도 좋고, 풍경도 좋지만 늘 아쉽고 불편했던 게 바로 숙박이다. 전국 어딜 가나 비슷한 스타일의 모텔, 아니면 기껏해야 프랜차이즈 호텔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늘 부러운 나라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일본이다. 어느 지역을 가도 료칸(旅館)이란 형태의 전통적 호텔이 있으며, 지역의 음식과 멋진 서비스로 맞이해 준다. 동시에 지역의 관광 정보까지 전달해 주는 정보 중심지의 역할도 한다. 


잘 생각해 보니 한국에도 비슷한 곳이 있다. 소백산의 죽령, 문경새재의 죽령, 추풍령과 같은 고개에 있었고, 충주와 마포 등 나루터에 있었던 주막이다. 지금의 급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주막에도 분명히 구분은 있었다. 

▲고급주막 모습을 그린 신윤복의 주사거배
▲고급주막 모습을 그린 신윤복의 주사거배

관영 즉,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간으로 역(驛)이 있었고 또 민관이 같이 운영하는 원(院)도 있었다. 하지만 원은 토지만 국가 것일 뿐, 나머지는 지방 유지의 시설이었거나 출자한 형태였다. 한마디로 반관반민 형태라 볼 수 있다. 지금은 이름만이 남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조치원, 사리원, 그리고 이태원, 장호원, 홍제원 등이 대표적이다.


주막은 여러 종류가 있다. 객줏집이란 주막은 위탁판매도 하고, 환전도 해줬다고 한다. 목로집이란 주막도 있었는데, 이 목로란 것은 기다란 술판을 의미한다. 이 기다란 술판에 술을 주는것을 늘 서서 마시다 보니 일제강점기 시설에 선술집이란 이름이 생겼다. 덕분에 앉은 술집도 생겼다는 일화가 있다.


그 외 24시간 주막, 날밤집 등 대폿집은 큰 잔을 의미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만 해도 막걸릿집을 의미했다. 소줏집은 다모토리라 불렀다. 주막을 나타낼 때는 흰등이나 홍등으로 술주(酒)를 쓰기도 했지만, 술을 걸러내는 용수(긴 소쿠리)를 쓰기도 했다. 주막의 끝판왕, 24시간 주막인 날밤집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주당들은 24시간 술이 그리운 모양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주막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문화가 남은 곳은 거의 전무하다 본다. 그래서 좋은 것은 잘 살리고, 아쉬운 것을 보완해서 우리나라 전통 숙박 형태인 주막 문화가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은 좀 걸릴 것이다. 천천히 그 가치를 생각하며 복원해 나간다면,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다시 찾아낼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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