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방향성은 기자의 의지가 개입되는 게 당연하다. 명확한 방향성이 취재를 계획할 때 자리 잡아야 원활한 진행이 가능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모난 데가 없고 원만하다는 뜻을 가진 ‘원활한’이란 형용사다. 원활한 취재는 과연 좋은 것일까? 만약 기자가 설정한 방향성대로 취재가 흘러가지 않는다면 실패한 기사가 되는 걸까?
이번 호 12면에 기자는 1661차 ‘수요시위’ 취재기를 담았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수요일은 제12차 세계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이해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큰 행사가 계획돼 있었다. 평화로는 어느 때보다 더 뜨거웠다. 수요시위는 역사 부정 세력 등장 이후 시위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기자는 사전 취재를 통해 이를 접하고 큰 규모의 행사가 열리는 만큼 역사 부정 세력이 나타날 거라 예상했다. 그렇다면 기사에서 핵심 키워드로 삼을 생각이었다. 분량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거란 안심도 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평화로의 시위는 말 그대로 평화로웠다. 오후에 이어진 행사에서 역사 부정 세력이 나타났지만, 소규모인 데다 갈등 상황이 있지도 않았다. 수요시위 현장을 떠나며 기자에겐 아쉬움이 남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기자는 취재 현장에서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며 뜨거웠던 시위 현장을 회상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수요시위엔 반대 세력이 나타나지 않아야 좋은 건데, 어느 곳에 방향성을 둔 거지?’ 한 번 세운 방향성을 흩뜨리지 않으려다 수요시위의 진심을 흐릴 뻔했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내가 쓰는 기사에 상처받는 약자가 없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입사 이후 신문에 들어갈 만한 아이템을 찾고, 인터뷰에 쫓기고, 마감을 걱정하다 보니 어느새 기사 내기에 급급한 취재를 하고 있었다.
기사를 작성하기 전, 취재계획서를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예정돼 있던 할머님과 시위 참여자 인터뷰는 쉽지 않았고, 분량과 전문성이 부족해 한국성폭력상담소장님에게 추가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원활한 취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완성된 기사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수요시위 참여자와 피해자 할머님의 마음을 고려해 기사를 작성했다. 진심이 기사의 방향키가 된 셈이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님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할머님의 진심은 1600번이 넘는 수요시위를 만들었다. 이번 수요시위 기사를 통해, ‘위안부’란 단어의 뜻과, 일본군성노예제, 혹은 일본군‘위안부’로 불러야 한다는 것을 전하려 했다. 또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수요시위’ 현장을 세세히 담으려 노력했다. 취재보다 앞서야 하는 건 팩트뿐이고 진심을 전달할 수 없는 기사는 가치가 없다는 걸 이번 취재를 통해 깨달았다. 수요시위의 방향키를 돌린 것처럼, 기자는 단대신문이란 배를 타고 항해를 계속하고 싶다.
박가경 기자 nevergg0123@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