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대학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하나둘씩 붙기 시작한 대자보는 기세를 이어 대학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저 글 몇 줄 적힌 종이일 뿐, 떼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굳센 의지까지 꺾기엔 역부족이다. 글은 그런 힘이 있다. 물리적으로 가하는 힘은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 대학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각종 게시물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곳곳에 비치돼 있는 대자보와 신문은 캠퍼스 환경 질서와 미관만을 생각한다면 없는 편이 더 낫다. 하지만 그렇게 유지되는 청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건강한 사회는 침묵하지 않는다. 어수선한 캠퍼스 전경은 곧 민주적인 의사 표명이 가능하단 반증이다.
대자보와 신문은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고 조명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신문은 사견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은 중도를 걸어야 한다는 사명이 있기 때문인데, 기자는 항상 그 점이 어려웠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평소 관심 있는 주제만 다루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또 기사를 쓰다 보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력히 피력하기 위해 개인적인 견해가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그때마다 기자는 다양한 취재원의 인터뷰를 복기하며 그들의 입장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 1521호 사회기획에선 팝업스토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문제를 다뤘다. 기자는 그 실태를 더욱 생생히 담기 위해 성수동 일대를 찾아갔다. 공사 소음이 발생하는 곳곳엔 사업장 철거 현장이 있었다. 평소 관심 있던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두 눈으로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사태를 강조함으로써 기자가 보고 느낀 바에 대한 독자들의 동조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정리한 취재 내용을 읽어봤다. 기자의 가치관이 개입된 글엔 객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직접 보고 느낀 것보다 과장된 묘사뿐이었다. 기자는 과감히 문서를 삭제하고 노트북을 덮은 후 생각했다. 좋은 기사는 사건 속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 사사로운 감정을 강요해선 안 된다. 글을 읽은 후에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기자에겐 항상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가 중요하단 것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기자는 최근 티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불쏘시개로 사용되는 신문지를 봤다. 잔뜩 구겨진 채 화마 속에 던져져 종국엔 시커먼 재가 되는 모습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신문은 때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시민들의 삶을 뒤흔들기도 한다. 불씨가 돼 타오르듯,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것은 기자의 몫이고,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최전선에서 지켜볼 뿐이다. 그게 바로 기자가 생각하는 언론인의 사명이자 나의 소명이다.
우하혜나 기자 cloud0707@dankoo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