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현실과 떨어진 판타지가 아니다
패션은 현실과 떨어진 판타지가 아니다
  • 김희량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4.08 15:23
  • 호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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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혼란한 사회

 

꽃과 레이스가 가득한 디올의 2025 봄 오뜨 꾸뛰르 런웨이 모습이다. 사진 출처: The Imprression
꽃과 레이스가 가득한 디올의 2025 봄 오뜨 꾸뛰르 런웨이 모습이다. 사진 출처: The Imprression

헌법재판소 선고일을 앞두고 쓴다. 참사가 거듭되고 정치적 혼란이 커져 가는 상황에서 패션을 논의하기란 쉽지 않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반민주주의적인 정치 상황이 계속되고, 몇 달 전에는 무안공항 사고를 참담하게 지켜보았다. 용산 참사,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여러 사건의 계보를 살피다 보면 자아가 분리되는 느낌이다. 사회와 역사에 얽혀 있는 현실의 나와 패션을 공부하는 나는 좀처럼 통합되지 않았다.


패션뿐만이 아니다. 정치·사회적 상황과 개인의 일상은 분리된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도 일상은 큰 이상 없이 돌아가고 있고 전시 상황에도 사람들은 일상을 살았다.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목격하면 해결 방안을 고심하다가도 내 삶의 목표는 결국 개인의 풍요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모든 고찰과 반성이 무용해지는 순간이다. 물론 시위에 참여하며 직접 행동하는 많은 분이 계신다. 그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패션은 화려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심각한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고, 패션은 그 판타지를 효과적으로 제공해 준다. 디올의 <2025 봄 오뜨 꾸뛰르 런웨이>는 동화 속 세계 같았다. 발렌티노 <레디투웨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꽃과 레이스, 반짝이는 주얼리가 가득했다. 이 시즌은 유독 로맨틱하게 보였는데, 세계 곳곳의 전쟁 소식과 대조적이었다. 계급 상승과 자본 과시 욕망이 뒤섞인 패션계의 소비주의적 경향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패션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선망으로 추동된다. 그러한 특성상 패션이 현실로 `내려와서는' 선망의 대상이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션은 정말로 현실과 떨어진 판타지일 뿐일까? 정치·일상적 영역의 구분선은 사실상 불분명함에도 서로를 명확하게 분리하는 듯보인다. 하지만 사회운동과 정치 활동은 점점 일상과 가까워진 역사가 있다. 투표에 참여해야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던 때에서 서명운동, 평화시위, 보이콧 등 비제도적 방식으로 확장돼왔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 방식처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비교적 쉽게 집단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패션은 그 확장 지점에 위치한 분야다. 도무지 진지해 보이지 않는 분야, 심각한 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분야에서 정치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패션이 그렇듯 일상은 정치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김희량 칼럼니스트

 

 

김희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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