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번역 외길, 작품과 독자의 마음을 잇는 다리를 놓다
33년 번역 외길, 작품과 독자의 마음을 잇는 다리를 놓다
  • 이채은 기자
  • 승인 2025.04.08 15:11
  • 호수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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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등 日 소설가 작품 다수 번역 
감정 섬세하게 묘사… 총 588권 번역 

편견과 선입견 배제 번역가의 중요한 덕목
등장인물과 교감… 문학적 상상력이자 감수성

문학가는 내면 감수성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단순히 언어를 변환시키는 공장 아니야

 

김난주 번역가는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일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이채은 기자
김난주 번역가는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일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이채은 기자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에쿠니 가오리 등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 김난주 번역가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일본에서 바다 건너 온 문학 작품들은 김난주(67) 번역가의 손을 거쳐 한글의 옷을 입는다. 미궁과도 같은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번역하는 33년 차 베테랑 김난주 번역가를 만났다.

 

-번역가가 된 계기는.

“처음부터 번역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일본 문학을 공부하다가 자연스럽게 번역을 시작했다. 번역이라는 작업이 특별히 괴로움이나 고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 번역가가 돼 있었다. 번역 일을 시작한 지 3년쯤 지나서야 스스로 번역가가 된 걸 인식했다.”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와는 사적으로도 만나는 사이인데 작가와의 소통이 번역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작품에 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번역은 번역하는 사람의 몫이다. 때문에 번역가는 작가에게 자문하지 않고 작가도 번역가에게 가타부타 간섭하지 않는다. 번역 작업에 대한 실무적인 대화는 하지만 작품 자체가 대화 주제가 되는 일은 없다.”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번역과 독자들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는 현지화 번역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두는지. 

“번역 스타일은 이분할 수 없다. 양쪽 다 중요하다. 번역이라는 건 전달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나라별 문화의 차이로 작품과 독자 간 교감에 어려움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번역한다. 외국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사람이 읽게끔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번역 작업 중 지치는 순간에 해소하는 방법은.

“번역은 장시간의 집중과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다. 당연히 중간중간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엔 다시 일을 하러 책상 앞에 앉아야 하므로 환경이 격변하는 일은 안 된다. 베란다에 나와서 화분에 물을 준다든지, 마른 잎을 뜯어낸다든지 집 안에서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에 눈을 돌린다. 일상에서 나만의 소소한 기분 전환 방법을 찾는 편이다.”

 

-번역가로서 ‘직업병'은 없는지.

“사소하게는 길을 가다가 맞춤법이 틀린 간판을 발견하면 거슬린다거나 책을 읽을 때 자꾸 문장을 검열하게 되는 게 직업병인 것 같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특히 번역서를 읽을 때 맞춤법이 틀렸거나 문장이 이상하면 고치고 싶어진다. 작품을 편하게 감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 번역에는 언어 능력뿐 아니라 문학적인 상상력과 감수성이 요구될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갈고닦는지.

“특별히 갈고닦는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편견이나 선입견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작품 속에 살인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고 치자. 그럼 살인자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그 인물과 교감해야 하는데 우리가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윤리관과 도덕관이 끼어들면 교감이 어려워진다. 작품 세계에 들어갈 때는 내가 갖고 있는 인식과 잣대들에 얽매이지 말고 편견 없이 풀어놓아야 한다. 등장인물과 제대로 교감하는 것이 곧 문학적 상상력이자 감수성이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번역가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과학적인 미래를 내다볼 역량은 안 된다. 다만 문학이란 몇십억 인간들의 미궁과도 같은 내면, 시시때때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다루는 예술 작품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그 몇십억 인간 중 하나여야 비로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 중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는 책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작업을 할 때마다 그 작품이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다. 어떤 작품이 가장 어려웠냐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로 지금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 가장 어렵다고 답한다. 모든 작품이 다 의미 있고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다.”

 

-번역 작업에서 자신만의 철칙이 있는지.

“규칙이나 철칙에 자신을 얽매는 시기는 이미 지나간 것 같다. 옛날에는 뭔가를 계속해서 규정하고 규칙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것들을 모두 풀어놓고 있다. 단지 항상 지금 하고 있는 작품에 열중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를 얽매지 않고 자유롭게, 다만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게 해준 원동력은.

“‘일하는 나'를 좋아한다. 번역 작업을 할 때는 작품 속에 오만 가지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머릿속이 요동치고 들끓는다. 하지만 오히려 내면은 굉장히 안정돼 있다. 인물들을 통제하면서 관찰하는 것에서 안정을 느낀다. 일을 안 하면 오히려 불안정하다. 원동력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다른 외부 요인 때문에 번역 일을 하는 거였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했을 것 같다.”

 

-좋은 번역이란.

“좋은 번역의 정의는 고정된 게 아닌 것 같다. 그저 번역 작업을 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나중에 돌아보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그게 나의 최선이었고 최고의 번역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스스로 만족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으면 좋은 번역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요즘엔 감수성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내면의 감정과 여린 부분을 드러내면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면에 움츠린 감수성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는 건 강한 힘이다. 이는 번역하는 사람들 각자가 이미 알고 있고 갖고 있는 단어를 밖으로 꺼내놓는 힘과 비슷한 것 같다. 번역하는 사람들은 감수성을 억누르도록 교육받고 훈련돼 온 것들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번역가는 단순히 언어를 변환시키는 공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 재학생들에게 한 마디.

“자신의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 행동이 정말 내 생각에서 비롯된 건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힘에 그저 동조하는 것인지 모든 학생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자기 성찰력을 키우길 바란다.”

 

김난주 번역가의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변환을 넘어 작품과 독자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돼왔다. 3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매 작품에 최선을 다한 그의 작업 덕분에 우리는 일본 문학을 우리말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앞으로도 김난주 번역가가 보여줄 풍부한 글의 세계를 기대한다. 

 

김난주 번역가가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
김난주 번역가가 환하게 웃음 짓고 있다.

자녀 위해 시작한 아동 문학 번역, 이제는 손주가 읽는다

김난주 번역가는 일본 문학 특유의 감성을 섬세하게 살리는 문장 감각으로 독자들에게 ‘믿고 보는' 번역가로 자리매김 해왔다. 현재까지 총 588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지금도 왕성한 번역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작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침묵의 퍼레이드』, 에쿠니 가오리의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요시모토 바나나의 『꿈에 대하여』 등이 있다. 

 

일본 소설뿐만 아니라 아동 문학도 상당수 번역했다.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어린이책을 번역해 볼까' 생각했던 것이 계기가 돼 아동 문학을 번역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자녀들이 성장해 손주가 태어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올해 6살이 된 손주에게 손수 번역한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번역은 김난주 번역가의 삶의 일부였다. 1958년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7년 쇼와여자대학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 이수. 1992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일각수의 꿈)』으로 번역가 활동 시작.

 

 

이채은 기자 chae08@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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