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 동문이 자랑스러워하는 총동창회 만들려 노력할 것
실패해도, 성공해도, 이상해도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 대학 홈페이지에 들어가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면 ‘기부자 명예의 전당’이 보인다. 그곳엔 늘 가장 먼저 얼굴을 빛내는 사람이 있다. 모교 발전 기금으로 우리 대학에 10억 원을 기부한 고정용 총동창회장이다. 남다른 애정으로 우리 대학 구성원의 결속력을 높이는 고정용 총동창회장을 만났다.
-우리 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하게 된 배경은.
“내가 상경계열에 입학한 1977년에는 법대나 상경 계열 취직이 잘 됐다. 사회에 나갈 것을 염두에 두고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지금 돌아봐도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또 당시엔 현재 광역계열 모집처럼 경제학과로 바로 입학하는 게 아니었다. 상경계열로 입학해 1년 동안 공부하고 경영·경제·무역학과 중에서 선택하는 거였다. 나는 그중에 경제학과를 선택했고 잘 맞았다. 지금도 학교 생활할 때 배운 지식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당시엔 한남동 캠퍼스였는데 본가와 가까워 입학시험을 치르고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제학과에서 배운 내용이나 활동 중에 기억 남는 것이 있다면.
“경제 전반의 규칙성을 분석하는 ‘거시경제학’을 당시 학과에서 배웠다. 거시경제학이 경영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그때도 미래를 내다보고 예측하는 게 재밌었다. 대학 시절 배운 경제학을 바탕으로 난임 치료제 제품을 사업 종목으로 선택했다.”
-재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동아리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선우리’라는 봉사동아리에서 오래 활동했다. 동아리 회장까지 했다. 그 당시에는 ‘선우협의회’였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 또 선후배와 지금도 만나고 있다. 작년에 선우 동아리 53주년을 기념해 학교에서 홈커밍데이 행사를 했고 선우 동아리 출신 150여 명이 참석했다. 빗자루로 학교를 청소하고 쓰레기도 주웠던 봉사활동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경제학과를 졸업해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제약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에 취직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첫 회사가 ‘삼일제약’이었는데 그곳에 입사하기 전에 스무 군데 정도 지원했다. 몇 개 빼고 다 떨어졌다. 전공을 살리기보다 어떻게든 취직하고 싶었다. 영업이 적성에 맞기도 해서 합격했던 제약회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여러 제약회사에서 임원을 지냈다. 회사를 나와 직접 경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말단 직원부터 부사장까지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회계, 경리, 무역은 물론이고 개발부터 생산까지 각 부서장과의 회의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얻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직접 내 사업을 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고 지금의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이 있다면.
“‘신뢰’다. 모든 업종이 그렇겠지만 고객과의 약속이나 믿음이 가장 큰 밑바탕이 된다. 신뢰가 생기고 나면 고객과의 관계가 동반자로 발전한다.”
-난임 치료제 전문 기업을 운영하며 난임부부를 위해 제품 개발 및 공급을 하고 있다. 제약회사 중에서도 ‘난임’을 분야로 선택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저출생 국가고 출생률이 점점 더 떨어지는 추세이니 관심이 갔다. 그래서 시장 조사를 시작했는데 당시 정부에서도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었다. 경영학을 배울 때 사업은 정부가 향하는 방향과 맞춰서 경영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고 했다. 계속 발전되는 시장일 거란 확신이 있어 뛰어들었다.”
-경영을 꿈꾸는 재학생들에게 한 마디.
“많은 경험을 해라. 남이 잘하니까 나도 잘할 거란 생각은 버려라. 경험 중에서는 실패하는 것도 있고 성공한 것도 있고 이상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모두 다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나도 제약회사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창업할 수 있었다. 준비와 확신 없이 창업하면 100전 100패다. 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패할까 봐 도전하지 않는 건 우둔한 짓이다. 실패를 생각하면서도 도전해 경험을 쌓아라.”
-우리 대학에 지금까지 총 10억원을 기부했고 회사에서도 수익금을 기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착한 기부자상’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기부란 어떤 의미인지.
“기부는 사회와의 약속이다. 사회를 통해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회사에서 약 35개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학교를 지어주고, 아프리카 니제르에 여성 기숙사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 대학은 장학금과 필요한 곳에 쓰도록 10억 기부를 완료했다. 모교이니 학교 발전을 위해 기부했다.”
-우리 대학에 꾸준한 기여로 상경관에 ‘월천 고정용 강의실’이 생겼다. 이름을 딴 강의실이 생겼을 때의 기분은.
“내 이름을 딴 강의실이 생기는 게 버킷리스트였다. 상경대 졸업생인데 상경관에 생겨서 더 좋았다. 그곳에서 공부할 학생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총동창회는 어떤 단체인지.
“25만 동문이 학교를 졸업하면 자기 먹고 사는 데 바쁘다. 그래도 우리가 졸업한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계획이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동창들을 한데 모으고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총동창회에서 하고 있다. ”
-총동창회장으로 당선됐을 때의 소감은.
“책임감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우리 동창회가 더 결속될지, 어떤 사업을 통해 동창회를 알릴지, 동문이 자랑스러워하는 동창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했다.”
-총동창회장으로 당선된 이유는.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한다.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30년 정도 하고 사람 만나는 걸 직업으로 삼으니 폭넓은 교류가 있었다. 그런 점이 총동창회장 당선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작년 연말에도 송년회인 ‘단밤’이 성황리에 개최됐다. 700여 명의 동문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직접 준비한 송년회에 수많은 동문이 모인 것을 보면 어떤지.
“역시 가족은 좋은 거구나 생각했다. 일단 어떻게든 모이면 즐겁다. 옛 생각을 하고 추억에 잠기는 것도 좋다. 다른 대학 송년회보다 유독 우리 대학 송년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편이다. 다른 대학에서 우리 대학만큼 동문회가 잘 돼 있는 곳이 없다고 부러워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면 자랑스럽고 너무 행복하다.”
-재학 시절과는 다르게 우리 대학이 터를 옮겼다. 죽전과 천안으로 나뉘어 이원화도 됐다. 총동창회장으로서 현재 우리 대학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일부 동문이 캠퍼스 이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면 나는 ‘직접 와서 한 번 봐라’라고 말한다. 규모며 환경이며 한남동 시절보다 많이 발전했다. 지금이 더 안정적이다.”
-우리 대학 재학생들에게 한 마디.
“학교 선배로서 후배들이 잘됐으면 좋겠다. 자기 전공에선 박사가 되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또 주위 동료들하고 관계도 잘 쌓고 학교생활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대학은 전공을 살려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할지 준비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사회 진출 준비를 잘했으면 한다.”
동문 교류 활성화 위해 ‘전국일주’도 마다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잠을 줄이며 시험공부했던 기억, 학과 생활, 동아리 활동 등. 졸업 후엔 대학 시절 추억을 뒤로 하고 각자의 밥벌이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무게를 어깨 위에 얹고 살다가도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동창이 모였을 때다. 총동창회에서는 동문의 소속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후배 양성을 위해 ‘단문장학회’를 만들었고 매년 봄엔 총동창회 골프대회를, 하반기엔 송년 모임을 준비한다.
고 총동창회장은 ‘단국일주’로 전국 동창회와 만남을 갖고 있다. 그는 “코로나 이후 지방에서 크고 작게 모이던 동문회가 유명무실해졌다”며 “취임하자마자 전국 한 바퀴를 돌아 지방에 있던 동문회를 다시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해 ‘단국일주’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단국일주’는 충청도를 시작으로 부산, 대구, 광주 등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달 12일에는 ‘제26회 동창회장배 골프대회’가 열리는 등 올해도 활발한 동창회 활동이 예정돼 있다. 1985년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5-2000년 ㈜삼일제약 부장. 2001-2008년 ㈜태준제약 상무. 2013년 ㈜아이젠파마코리아 설립. 2023년 캄보디아 부총리/교육부장관 훈장. 2024년 국무총리 표창. 2025년 모범납세자 표창.
박가경 기자 nevergg0123@dankoo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