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70일, 임시주택 아직
안동사과 재배지 피해 면적
용인 에버랜드 면적 6배 이상
Prologue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단 사흘 만에 경북 동북부를 집어삼켰다. 의성군 안평면과 안계면 일대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 ▶울진 ▶대구 군위군까지 번졌다.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에 국가 소방 동원령 3호가 내려졌고, 화재는 발생 11일 만인 지난 4월 1일 진화됐다. 전례 없는 화마가 지나간 지 2달. 불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경북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만이 남았다.
불씨가 남긴 숲의 상처
최대 순간풍속 초속 27m에 달하는 태풍급 강풍을 타고 번진 불길은 자연은 물론 수십 년간 쌓아온 인생 그 자체였던 공간까지 모조리 삼켜버렸다.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지켜낸 이야기를 따라 길안면으로 향했다.
길안면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좌우에는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산맥이 보였다. 그 모습에 기자는 ‘르포 취재’라는 본 목적은 잊고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매료됐다. 경북 일대로 들어왔음에도 주변 산은 초여름의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재 발생지와 가까워질수록 주변 산의 풍경은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점점 어둡게 변했다. 목적지인 길안면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주변 산들이 모두 검게 물들어있었다. 경북 일대의 화재가 진압된 지 2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고 벌거벗겨진 산의 모습이었다. 화마가 휩쓴 현장의 처참함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길안면에 가까워졌을 무렵, 재정비를 위해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점곡휴게소’를 찾았다. 하지만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기자는 휴게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지도에 휴게소로 표시돼 있지만, 도착해서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 초라한 형태였다. 휴게소는 임시 컨테이너로 만든 간이 화장실이 전부였다. 임시 컨테이너 뒤 큼지막이 세워진 벽 사이로는 새카맣게 타버린 산도 눈에 들어왔다. 현 상황에 대한 설명을 점곡휴게소에서 만난 이근호(가명)씨에게 들을 수 있었다. 경북 일대에 거주하는 이 씨는 “화재가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점곡휴게소에도 불이 붙어 몽땅 타버렸다”며 “평소 이동하면서 이 휴게소를 자주 들렸었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휴게소가 모두 타버려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작물 재생산까지 30년
장장 260km를 달려 안동시 길안면에 도착하니, 화마의 참담함을 더 깊게 체감할 수 있었다. 주변의 거리는 재해(災害)가 지나간 흔적을 보여주는 듯 고요했다. 계절에 맞게 푸른 빛을 띠어야 할 산 위의 나무들은 칙칙한 잿빛이었다. 길안면 주민 최영자(가명)씨는 “바로 앞에 보이는 검게 탄 산이 진화되기 전에는 불바다였다”며 “화재 규모가 크다 보니 검은 연기로 주변이 뒤덮여 앞도 잘 안 보이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3월 22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풍을 타고 23일 오후 4시경 안동시 길안면까지 넘어왔다. 발화 지점부터 길안면까지 거리는 20km 이상, 작은 불씨가 경상북도를 비롯해 강원도, 경상남도를 집어삼키는 데는 3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최 씨는 “전례 없는 화재에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기자는 길안면 일대의 이재민들이 생활했던 임시대피소인 ‘길안중학교’를 찾았다. 강당으로 들어가니, 이재민들이 생활하는 텐트가 보였다. 그러나 기자가 방문한 당시에는 대피소에 남은 이재민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길안중 이재민 대피소에서 근무하는 강해경(행정7급) 안동시청 공무원은 “3월 말부터 임시대피소가 운영됐는데, 당시에는 이곳에만 50세대(약 70명)가 생활했다”며 “일주일 전부터 이재민들이 조립식 임시주택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지금은 2명만 남았다”고 말했다.
길안중에서 만난 박동배(63)씨에게 이재민의 생활도 들을 수 있었다. 박 씨는 화재 전까지 길안면 일대 산에 있는 120평 가량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산지에서 가축을 기르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던 박씨지만, 화재는 순식간에 그의 일상을 앗아갔다. 화재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면서 박 씨는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대피해야만 했다. 그는 “마치 전쟁 같은 상황에 아무것도 챙길 겨를이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 씨는 지난 3월에 대피소에 들어왔다. 입소 당시 함께 하던 이재민들은 현재 대부분이 조립식 임시주택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박 씨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임시주택은 가족단위 이재민들에게 우선적으로 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인가구인 나는 임시주택 우선 순위와는 멀다”고 말했다. 또 박 씨는 “학생들이 학교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길안중 대피소에 머무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정부 지원으로 당분간은 인근 모텔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계에 빨간불이 켜진 이들도 있다. 김덕수(가명)씨는 “경북 일대에서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산불로 과수원 일부에 불이 붙어 적지 않은 피해를 봤다”며 “다른 농업인에 비하면 내가 입은 피해는 적은 편이다. 가지고 있는 과수원이 모두 불에 타서 막대한 피해를 본 사람도 주변에서 봤다”고 말했다. 사과는 ‘안동’하면 빼놓을 수 없는 대표 특산물이다. 하지만 산불의 영향으로 사과 재배지에 치명적 손실이 생겼다. 경북 5개 지역(안동·의성·청송·영덕·영양)의 사과 재배지 피해 면적은 총 1698㏊로 집계됐는데, 이 중 안동 피해 면적이 868㏊로 가장 컸다. 에버랜드 전체 면적이 약 130㏊인 점을 고려하면, 안동에서 산불로 피해를 본 사과 재배지는 에버랜드 면적의 6배 이상에 달하는 셈이다.
더불어 같은 시군 ‘송이’ 피해 면적은 1만 2000㏊로 연간 생산 피해액은 108억 원으로 집계됐다. 송이를 재생산하기까지 최소 30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추정 피해액은 막대하다. 149시간 동안 번진 산불은 고스란히 농·임업인들의 고통과 상처로 남았다. ‘괴물 산불’로 불리는 이유다.
재정 투입·제도 개선도 과제
정부는 경북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총 1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고, 이 중 1조 1228억 원을 주거 융자, 농기계 지원, 대체작물 조성 등 18개 복구 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 금융 지원과 공공형 일자리 제공 등도 병행 중이다. 지자체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원금 지급까지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수 있고, 기준 미비로 일부 피해자는 즉각적인 도움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한계도 드러난다. 또한, 산불 대부분이 실화(失火)임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경각심 부족 우려가 크다. 실제 방화에 대해 법적 징역형이 존재하지만, 실형 선고 비율은 낮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임상준 교수는 “산불 피해지는 지표면을 덮고 있던 낙엽과 식물이 모두 사라져 집중호우가 내리면 토양 침식이나 지표 유실 위험이 높고, 대체적으로 산사태 발생 위험도 증가한다”고 말했다. 또 “산림에 인접한 주택이나 시설물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내화수림대 혹은 방화림 조성이나 산불에 강한 숲을 만들기 위한 기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pilogue
검게 그을린 땅도 시간이 지나면 연둣빛 새순이 움튼다. 하루아침에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이들의 작은 희망이 조금씩 피어나고 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산자락에 어느새 작은 싹이 돋아나듯, 이재민들의 일상에도 서서히 푸른빛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글·사진=한지수·김준원·송지혜 기자 dkdds@dankoo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