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더 내고 덜 받아
세대 간 형평성 문제 시끌
장기재정 추계 등 개선 필요
사회초년생이 아르바이트 급여 명세서에서 처음 확인하는 ‘국민연금’ 항목은 낯설고 부담스럽다. 생활비로도 빠듯한 월급을 손에 다 쥐어보기도 전에 보험료로 빠져나가지만, 그 대가로 돌아올 노후 보장은 청년 세대가 체감하기 어렵다. “의무니까 낸다.”, “나중에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청년들의 목소리는 국민연금에 대한 거리감을 드러낸다.
청년층 부담 더 커진 개혁안
올해 3월, 국민연금 제도 개혁안이 발표됐다. 18년 만에 개정된 국민연금 제도 개혁안에는 보험료율 인상, 소득대체율 상향, 연금 크레딧 제도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보험료율 인상은 가입자가 매달 내야 하는 연금 보험료 비율을 높이는 것이고, 소득대체율 상향은 은퇴 후 받을 연금이 현재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늘려주는 제도다. 또 연금 크레딧 제도 강화는 군 복무나 출산, 실업 등으로 실제로 보험료를 내지 못한 기간도 가입 기간으로 인정해 연금 수급 자격을 채울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개정된 국민연금 제도에 2030세대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미래 세대가 감당할 부담은 커졌는데, 제도 설계 과정에 청년층 의견 반영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정 요건에 따라 의무 가입해야 하는 대표 공적 연금 제도다. 매달 보험료를 내면 은퇴 후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받는 방식이다. 운영 구조는 ‘수정적립방식’으로, 현재 일하는 세대가 낸 보험료로 은퇴 세대가 급여를 받는다. 국가가 운영비를 일부 부담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 민간 연금에 비해 가입자의 비용 부담이 적다.
국민연금은 1973년 국민복지연금법 제정으로 시작돼 1988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후 적용 대상을 확대하며 전 국민 연금으로 발전해 왔다. 저소득층에게는 낸 것보다 많은 급여를, 고소득층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지급하는 소득재분배기능은 사회 통합에도 기여했다. 제도 설계 당시 목표는 40년간 가입 시 평균 소득의 약 60%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기 보험료율이 3%로 낮게 설정돼 국민의 부담은 적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부족분은 결국 후세대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생겼다. 이에 부족해진 연금을 메우고, 고갈 시점을 연장하고자 개혁안이 발표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보험료율은 9%이고,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0.5%p씩 인상해 2033년에는 13%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개혁안 목표다. 소득대체율은 기존 41.5%에서 43%로 내년부터 바로 적용된다. 본래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로 하향 조정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제도 변화로 인해 43%로 상향 조정됐다.
보험료율: 근로자가 벌어들이는 소득(월급 등)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로 부과되는 비율로, 현재 소득의 일정 부분을 미래 연금 재원으로 적립하기 위해 납부하는 비중.
*현재는 보험료율이 9%일 경우 월급 100만 원을 받는 근로자는 매달 9만 원을 국민연금으로 내고, 이 중 절반은 직장이 부담.
소득대체율: 은퇴 후 국민연금으로 받는 연금액이 과거 평균 소득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을 보장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로, 연금의 실질적인 보장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현행 9%지만, 이를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41.5%에서 43%로 확대하는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이 추진되고 있음.
2047년 연금 고갈, 청년은 불안하다
청년층의 국민연금 불신은 주로 ‘연금 고갈’ 전망에서 비롯된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저출산·고령화가 겹치며 2047년이면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예측했다. 개혁 이후 전망은 2039년에서 2047년으로 8년 늦춰졌으나,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따른다. 예를 들어, 2006년생 20세 청년을 기준으로 앞으로 약 40년 동안 13%의 보험료를 내야 하지만, 이 청년이 60세가 되는 시점은 연금 고갈 예상 시점인 2047년을 훨씬 지나기 때문에 노후 보장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이강구 박사는 “기금 고갈은 ‘연금 급여 지급 불능’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국민 신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기금이 사라지면 그 이후에는 해마다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보험료 인상이나 세금 투입 없이는 우리가 약속받은 급여를 제대로 받을 수 없으므로 제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세대 간 형평성 문제도 크다. 현재 고령층은 낮은 보험료율로 연금을 받고 있지만, 청년층은 더 높은 보험료율을 오랫동안 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질 임금은 줄고 생활비와 저축에 직접 부담으로 작용한다. 물가 상승, 경제 상황, 정책 변화 등으로 수십 년 뒤 실수령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청년층 불안을 키운다.
국민연금을 납부하고 있는 박지후(25) 씨는 제도 필요성에 대해 “부모님은 부양 대상이다. 나중에 부모님 건강이 악화돼 연금이 확실히 보장되면 부양 부담을 줄일 수 있으니 세대 간 형평성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씨도 “연금 제도가 현재 청년들의 노후까지는 보장해 주긴 어려울 것 같다”며 “국민연금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내는데, 나중에 받을 수는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은 A 씨는 “만 18세에 첫 달 보험료를 국가가 대신 내주고 이후 소득이 없으면 납부 예외로 분류되기 때문에, 강제납부가 아니라 ‘기회를 미리 열어두는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막상 월급에서 빠져가나는 국민연금을 생각하면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해외 주요국들은 다음 세대가 안게 될 연금 제도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여러 대책을 마련했다. 한 예로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저출산, 고령화를 겪고 있다. 이에 대비해 일본은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미래 기금 고갈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연금 수급액을 자동으로 줄이는 시스템으로, 인구 변화와 경제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장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그해 물가가 1%만 올라도 연금도 같이 1%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거시경제 슬라이드 제도는 낮은 출산율과 고령 인구의 증가 현상을 고려해, 물가 상승률이 1%라도 연금 인상률은 0.5%로 제한할 수 있게 해 연금 기금의 고갈 시기를 늦춘다. 이 박사는 “일본과 스웨덴은 한국보다 출산율도 높고, 현재 공적연금의 수지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향후 변동사항이 생겼을 때 자동조정장치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해외 연금 개혁 사례를 통해 참고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장기재정을 먼저 균형상태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설계과정에 청년층 참여해야
이러한 상황 속에 정부는 청년층의 불신을 완화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했다. 2027년부터 시행 예정인 ‘생애 최초 청년 국민연금’은 청년이 처음 가입할 때 3개월 치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다. 대상은 만 18~26세로, 시행 첫해 약 45만 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가 시행되는 2027년에 18세가 되는 청년 45만 1000여 명이 우선 적용 대상이다. 국민연금 최초 가입 시 본인이 신청하면 보험료 3개월분을 국가가 부담하며 만약 신청하지 못한 경우에도 가입 기간 3개월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박사는 이에 대해 “정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일회성 지원만으로는 실효성이 제한적일 수 있다”며 “첫 3개월 보험료를 국가가 대신 내주는 것 자체가 제도 가입 유인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후 장기적인 납부 지속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18~24세 청년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24.3%, 20대 전체 가입률도 35%에 불과하다. 이는 주요 선진국 약 80%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청년 시기에 납부를 시작하지 못하면 평생 연금 수급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조기 가입의 필요성은 늘 제기돼왔다.
이 제도 역시 재정적 한계는 존재한다. 국가가 처음 3개월분 보험료를 부담하는 만큼 국가 재정 부담도 함께 증가하게 된다. 국민연금 재정과 세금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부담하는 청년의 3개월치 보험료는 결국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박사는 “안정적인 국민연금 운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명한 정보 제공과 제도 설계 과정에 청년층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명확한 정보 제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청년층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국민연금 제도는 여전히 숙제를 안고 있다. 국민연금은 단순한 숫자의 계산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약속이자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청년들이 ‘내고도 못 받는 세대’가 되지 않도록, 보다 유연하고 지속 가능한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지수·이채은·구민채 기자 dkdds@dankoo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