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는 종점 아닌 경유지일 뿐"
“웃음은 단순한 유희일까, 아니면 삶을 지탱하는 힘일까. 무대 위에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한 희극인은 그 질문에 자신의 인생을 담았다. 웃음 속에 울림을 담고,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을 단련하며 개그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강렬한 에너지와 열정으로 주변을 밝히는 방송계 비타민, 조혜련(55) 희극인을 만났다.
-희극인이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연예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담임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한양대 공대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친구들이 ‘너는 끼가 넘치고 남을 잘 웃게 하니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결국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학과 생활을 해보니 너무 잘 맞아 희극인을 꿈꾸게 됐다.”
-공대 입시를 준비하던 게 아쉽지 않은지.
“한 번도 아쉽다고 생각한 적 없다. 만약 그곳에 진학해 졸업했다면 대기업에 취직해 일하고 있겠지만, 나는 대기업이 찾아주는 연예인이 됐다. 지금은 연기, 연극 무대, 노래, 강연 등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선사하지만, 만약 평범한 회사원이 됐다면 비교적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20대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이 길을 선택하고 싶다.”
-지난 방송 생활은 어떤 의미인가.
“책임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데뷔 초반에는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앞이 막막하고 깜깜했다. 즐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이 일을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그만큼 나와 잘 맞고, 이제는 일하는 하루하루가 재밌다. 가장 큰 장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대중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연예인이란 직업은 공인이기에 대중에게 줄 영향력을 생각하며 늘 조심하다 보니 책임감이 길러지고 내적으로 성장한 것 같다.”
-20대의 조혜련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대학 진학 이전에는 농사지으며 ‘선머스마(머슴)’처럼 살았다. 집이 어려워 먹을 것이 생기면 닥치는 대로 먹었다. 그러니 살도 찌고 자존감도 떨어졌다. 외모로 호감을 주지 못해 개그맨 시험에 낙방하는 좌절도 겪었다. 휴학하고 과자 공장에서 12시간씩 8개월을 일해 학비를 모았다. 되돌아보면 참 바쁜 20대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마음 한구석이 허해 술에 의지하기도 하고 괴로워하며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책임감’ 덕분이었다. 나는 공인이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이끌었다.”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었던 순간은.
“`MBC 코미디 하우스'라는 프로그램 중 ‘웃지마’ 코너에서 골룸 분장을 했었다. 당시 여성 희극인이 망가지는 분장을 하는 게 쉽지 않았고 그때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박나래, 김숙 등 여러 여성 희극인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희극인들이 파격적인 분장 개그를 선보일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게 뿌듯하다.”
-본인만의 강점과 경쟁력은 무엇인가.
“코미디 소재를 보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고, 남녀 갈등을 일으키는 등 가학적인 내용이 많다. 하지만 설령 시청자들이 자극적인 걸 좋아할지라도 내가 가진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는 개그를 해야 한다. 웃음을 주되 깊은 울림과 감동, 메시지를 함께 전달할 수 있는 개그를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도 담배, 술, 종교적인 개그 소재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데뷔로 돌아간다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미래가 안 보여 두려움이 많은 20대를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내 인생은 앞으로 멋지게 펼쳐 나갈 수 있다. 물론 중간에 고난은 찾아오겠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동료 희극인 강호동과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종점이 아니라 경유지일 뿐이다.”
-유튜브 채널에 `신여성' 코너를 개설했다. ‘신여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신여성이란 고민하지 않고 시원하게 지르는 것이다. 젊은 층이 미래 고민이 많다. 본인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다 껴안고 걱정한다. 예를 들어 ‘이 좁은 서울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직장에서 잘리면 어떡하지…’ 같은 고민. 고민에 대한 답을 섣불리 단정 짓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속 시원하게 한 번 질러야 한다. ‘에라 모르겠다’며 무모하게 도전하는 헝그리 정신을 느껴보면 좋겠다.”
-열정과 에너지의 원동력은.
“8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나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쳤다. 20대를 되돌아보면 독립적으로 살았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아가는 자세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공인으로서 ‘긴 녹화 시간도 이겨내자, 참아내야 한다, 감독이 날 찍고 있다’고 되뇌이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지금도 힘이 떨어지고 목이 쉬어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낸다.”
-인생 선배로서 보내는 조언.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 인생은 너무 길다. 20대에겐 아직도 약 80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만약 취업했더라도 일이 잘 맞지 않다면 멈춰서 여유를 가지는 게 좋다. 다시 천천히 준비해 도전하면 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대 연출가 활동을 하고 싶다. 얼마 전 연극 ‘사랑해 엄마’ 연출에 도전했다. 7개월 동안 3만 명의 사람들이 극장을 방문했고, 춘천 연극제에서 대상도 받았다. 시드니에서 공연도 했고 오는 10월에는 LA 무대에 오른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무대를 보고 `짜임새 있게 잘 만들었다'라고 말해줬을 때 큰 보람을 느꼈고, 연출가라는 직업의 매력에 눈을 떴다.”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힘들고 괴로울 때 에너지를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최근에 `페퍼톤스'라는 팀과 ‘고장난 타임머신’이라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 노래가 20~30대 직장인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고 들었다. ‘출근해서 사원증 걸고 일하면 참 멋져 보였어. 근데 어른이 되고 알았어. 칼퇴에 빨간 날이 최고. 다시 어릴 적으로 돌아갈래. 타임머신에 올라탈래. 근데 왜 시동이 안 걸리지 고장이 났나봐. 그럼 방법이 없네 받아들일 수밖에.’ 라는 가사가 청년들에게 크게 와닿았다고 한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위로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글을 읽을 우리 대학 재학생들에게 한마디.
“작년 ‘유퀴즈 온 더 블록’에 한순구 하버드 경제학자가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 워런 버핏은 몇조 원의 재산을 가졌지만 94세의 고령이다. 조세호에게 그 돈을 줄 테니 94세로 가겠냐고 묻자 안 가겠다고 답했다. 그럼, 20대에게 묻겠다. 그 돈을 줄 테니 94세로 가라고 하면 돈을 받겠는가. 대부분 안 받는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끝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1년의 가치가 몇천억이다. 우리는 그 몇천억짜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우리의 인생은 하루하루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다. 투덜거릴 시간이 없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순수한 웃음을 잃어가는 시대. 조혜련 희극인은 여전히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유쾌한 진심을 전한다.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책임감으로 버텨낸 긴 여정은 단지 가벼운 웃음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하루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살아갈 이유를 선사하는 일이었다.
웃음과 눈물 교차하는 무대 위에서 찾은 행복의 해답
행복이란 그저 웃고 즐기는 순간에 머무르는 감정일까, 아니면 삶의 고난을 견뎌낸 뒤 비로소 얻는 평온일까. 조혜련 희극인은 그 해답을 오랜 시간 자신의 삶 속에서,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수많은 무대 위에서 찾아왔다고 말한다.
한때는 세상의 시선에 치이며 숱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 상처받기도 했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단단해졌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세상 앞에 당당히 선 지금, 그는 단순한 유희를 넘어 ‘웃음이 주는 울림’의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그녀의 개그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에 깊은 위로와 공감을 안기는 힘이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고,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는 입가엔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1993년 `KBS 청춘스케치' 특채 10기 데뷔. 2005년 ‘Anacana’ 1집 앨범 발매. 2021년 SBS 연예대상 `쇼 스포츠 부문' 우수상 수상했으며 2024년 연극 ‘사랑해 엄마’ 연출을 맡았다.
구민채 기자 minchae5959@dankoo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