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그늘을 들추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신중하게 판단하고 싶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정말 반갑고 고맙고 자랑스러운지. 물론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했던 한복만이 아니라, 유물·그림·음식 등 여러 한국 문화를 다각도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첫째, 이 콘텐츠는 누구의 것인가? 라면용기에서조차 케데헌을 발견할 수 있는 지금, 그 라이센스가 우리나라에 속해 있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케데헌은 일본 기업의 기술과 미국 기업의 자본으로 제작된 콘텐츠다. 그 인기는 국위선양이라기보다는 남의 집 곳간 불리기로 읽을 수도 있지 않나.
둘째, 우리나라에서 같은 내용을 제작했다면 어땠을까?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떠오른다. 충분히 문화적인 파급력을 가졌을 거라고 자신할 수도 있지만, 케데헌의 인기와 ‘선진화된 해외’의 영향력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영어의 틀을 갖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미국의 프레임을 거쳤기에 더 매력적인 콘텐츠로 포장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셋째, 이 작품에 사용되는 유물은 어떤 기준에서 채택됐을까? 한국의 전통 문화는 어떤 방식으로 ‘각색’되는가? 케데헌에 나온 유물은 단청이나 일월오봉도 그림의 특징이 적용되면서 화려한 색깔을 얻었다. 대중의 시각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미디어의 시대에 ‘활용할 만한’ 전통을 발굴하는 방법이다. 비서구 국가의 전통은 시장 가능성이 인정되는 것만 취사선택된다.
넷째, 케데헌의 인기 이후 우리나라의 반응은 어떤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관련 굿즈를 팔기 시작했다. 호랑이 배지, 갓 모양 키링까지. 사장의 위기를 논하는 전통 문화가 주목을 얻자 상품화됐다. 전통 갓을 만드는 장인과 이야기하거나 호랑이·까치에 관한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등 전통문화에는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더 깊은 영역이 있다는 걸 보여줄 방법은 없을까?
비서구 국가의 전통 문화는 좋은 ‘재료’가 되는데, 역사적 맥락이나 가치가 상당수 약화된 채 시각적인 이미지, 이국성을 구현하는 데 활용된다. 그럼에도 비서구 국가의 문화는 가시성을 확보한 그 자체로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판매와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을 의식한 경제성·상업성과는 별개로 우리의 역사와 지나온 시간의 생활 방식을 궁금해하며 전통 문화에 파고들 수는 없을까? 꼭 고민해야 할 문제다.
김희량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