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으로 뒤덮인 찐득한 디저트를 눈앞에 두고 여자가 망설이고 있다. 그런 여자를 보며 남자가 말한다. “죄책감은 소화에 좋지 않아.” 현명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달콤한 디저트는 언제나 모순된 두 감정을 동반한다. 하나는 입안에서 스트레스가 살살 녹는 황홀함. 또 하나는 엄청난 칼로리에 대한 죄책감이다. 소화가 되거나 말거나 어쨌든 달콤한 디저트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렇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람. 그나마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쥐어짜 낸 방법이 홈 디저트였다.
그때 내가 고른 메뉴는 ‘바나나 플랑뵈’였다. ‘플랑뵈’는 과일을 달콤한 소스와 함께 조리해 즐기는 프랑스식 디저트다. 바나나 플랑뵈는 바나나의 포만감 덕분에 메인 디저트로도 손색이 없다. 바나나 자체가 워낙 달콤하니 직접 만들면 설탕과 버터 같은 죄책감 유발 재료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으리라는 얕은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나나 플랑뵈의 ‘끊어낼 수 없는 맛’을 간과한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중독성을 간과한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한동안 바나나 플랑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나는 체중계의 바늘이 두 칸 더 앞으로 전진하는 끔찍한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이 디저트는 심하게 달아야 맛있다. 마음 가는 대로 흑설탕을 듬뿍 넣어보자. 나는 마음이 흑설탕처럼 새까매지는 날에는 망설임 없이 흑설탕을 한 숟갈 추가했다. 반대로 넉넉하게 맞던 바지가 왠지 빡빡하게 느껴지면 슬그머니 한 숟갈 정도 덜기도 했다. 어찌 됐든 바나나 플랑뵈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한동안 나의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 끝에는 이 디저트를 먹는 습관이 자리 잡았었다. 어찌나 달콤한지 그 습관을 끊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블랙홀처럼 새까만 흑설탕과 부드러운 바나나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바나나 플랑뵈를 만나보길 바란다.
이주현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