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중독, 자조모임에서 회복의 첫 단추를 끼우다
청년 중독, 자조모임에서 회복의 첫 단추를 끼우다
  • 구민채·한지수·정세욱 기자 
  • 승인 2025.11.25 08:00
  • 호수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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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박채원 기자
일러스트 박채원 기자

Prologue

“처음에는 제가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어요. 그냥 애주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병원에 의지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A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한켠에 남은 쓸쓸함은 숨기지 못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삶을 헤매던 그는 지금 회복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중독, 청년까지 파고들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와 2030세대의 취업난은 청년층의 알코올 중독 문제를 악화시켰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통계에서도 20~30대 알코올 중독 입원 환자는 2021년 103명, 2022년에는 153명으로 늘었다. 20대 초반부터 시작되는 알코올 의존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방치되다가 50~60대에 이르러서야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사랑병원 유용진 원장은 “취업난과 경기 침체 등 불안정한 심리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빠른 방법으로 음주를 선택한다”며 “청년층의 음주율이 매우 높고 90% 이상이 음주 경험이 있으며, 그 중 60% 이상이 폭음을 즐기는 것으로 보고된다”고 답했다.

 

마약 중독 확산 속도는 더 빠르다. 대검찰청이 지난 10월 발표한 ‘8월 마약류 월간동향’에 따르면 20대(29.9%)와 30대(28.8%)가 전체 마약 사범 비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통계청 ‘한국의 사회동향 2024’에서도 10~20대 마약 사범 증가세가 뚜렷하다. 이는 마약 중독이 청소년과 청년층 사이에서 점점 더 퍼지고 있다는 ‘적신호’를 의미한다.

 

고립된 중독자들의 자조모임은 일상생활 복귀를 돕는 회복 경로가 된다. 자조모임이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자들이 모여 격려와 조언으로 회복을 공유하는 것이다. 전문가 치료보다 당사자의 경험과 집단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회복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대표적인 모임이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AA(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약물 중독자를 위한 ‘NA(익명의 약물 중독자들)’다. 1935년 미국에서 출발한 AA는 현재 전 세계 200만 명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 NA도 AA와 동일하게 ‘12단계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중독 인정 ▶자기 고백 ▶변화 ▶회복 ▶사회 복귀까지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안내한다.

 

서로 다른 경험 나누며 위로

기자가 찾은 용산구 ‘한길 AA’ 모임 공간은 모임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따뜻한 말이 오갔다. “잘 지냈어요?”, “지난주에 얘기했던 문제는 좀 나아졌나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20대 청년부터 7·80대 노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연령층이 모여 각자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눴다. 이들은 모두 익명성과 자발성을 위해 이름 대신 지역명이나 별칭을 사용했다.

 

오후 3시 정각, 모임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참석자들은 “안녕하세요. 저는 중독자 ‘00’입니다” 인사를 나누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12 전통’을 돌아가며 낭독했다. 12 전통은 AA가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이다. 개인의 회복은 공동체적 유대에 달려 있고, 금주 열망은 회원 조건이라는 핵심 내용을 포함한다.

 

“오늘의 주제를 선정해 주실 분이 계신가요?” 사회자가 말했다. 한 참석자가 “예외는 없다”를 제시했다. 곧바로 깊은 고백들이 이어졌다. 술이 다시 당기는 순간, 중독으로 인해 깊어진 갈등과 단절된 관계들. 참석자들의 이야기는 서로 달랐지만, 공감의 눈빛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모임 정리 시간이 되자 참석자들은 ‘전통비’를 모았다. 1000원부터 시작되는 이 금액은 모임 운영에 사용하며, 남은 금액은 AA한국연합사무국에 기부된다. 마지막 순서로 평온을 구하는 기도가 이어졌다. “신이시여,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어쩔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리고 이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소서!”

 

참석자 A씨는 밀양에서 학원을 운영하다 술 때문에 쓰러져 10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는 “그때 모든 게 무너졌다. 경력도 단절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학원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퇴원 후 그는 보험설계사·일용직 등 여러 일을 전전한 끝에 지금은 대학 진로진학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A씨는 “술을 끊고 나서야 일상으로 돌아왔다. 7년째 단주 중이고, 이제야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서는 기분이다”며 “문제를 인정하는 게 단주의 첫 단추, 스스로가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술을 끊겠다는 의지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NA 모임은 AA 모임 참여자보다 연령대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NA 자조모임은 약물 중독자들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회복을 돕는다. 약물은 알코올 중독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재발률도 높아 치료와 회복이 더디다. 그렇기에 알코올 중독자보다 더 굳은 의지와 도움이 필요하다. 모임 장소에는 참석자들의 새로운 출발을 돕는 검정고시 책이 꽂혀 있고, 일정 기간 단약에 성공한 참여자에게는 배지를 부여한다. 참석자들은 그곳에서 일상 회복을 꿈꾼다.

 

나눔과 공감이 만든 회복의 자리

자조모임은 중독자들이 유사 경험을 지닌 이들과 연결되며 회복 의지를 지속하도록 돕는 핵심적 지원 체계로 평가된다. 2019년 강선희 외 2명이 발표한 ‘익명의 알코올 의존자 모임에서의 자기 고백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에서도 AA 참여자들의 구술을 통해 자기 고백이 단주 유지에 실질적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에 따르면 고백 과정에서 형성되는 청자-화자 간의 정서적 교감이 단주 결심을 굳건히 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A씨 역시 자조모임을 통해 유사 경험을 공유하며 회복 의지를 유지했던 경험을 말했다. 그는 “2017년 술 문제로 고통받던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모임에서 만난 다른 참석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모임에 있는 분들이 내 심정을 잘 이해해줘 공감대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처음에는 나만 불쌍하고 특별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 점이 신기했다”고 밝혔다.

 

치료·재활 시스템 구축 필요

알코올과 약물 중독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문제로 확산됐다. 부산시립정신병원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 환자는 퇴원 후 10명 중 8명(80% 이상)이 6개월 이내 재발한다.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부족하다. 2021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알코올 사용 장애 1년 유병률은 2.6%로, 중독자는 134만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전문병원은 8곳, 지역 중독통합관리센터도 50여 곳뿐이다.

 

진료비가 일정하게 책정된 ‘정액제’ 구조도 문제다. 치료 시간이 길어져도 병원이 받는 금액이 비슷해 적극적 치료가 어렵다. 조기 관리도 뒤쳐진다. 약물 중독은 범죄 문제로만 인식돼 지원예산과 재활 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재발을 막기 위한 지속적 관리 체계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독일은 연령별 중독 실태를 정밀 조사하고 예방·치료·재활을 통합 관리한다. 임명호(심리치료) 교수는 “한국은 음주 법적 체계가 매우 약하다”며 “문제가 발생한 뒤에야 제재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한 “음주문화에 관대하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에 대해 융통성이나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원장은 “중독 문제는 단편적 개입이나 단기간 치료만으로는 회복이 어려워 지역사회자원의 유기적 연계는 물론 통합 치료와 재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며 “중독자들이 빠르게 회복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재활사업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전했다.

 

Epilogue

중독은 멀리에 있지 않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 그러나 회복도 마찬가지다. 용기를 내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다면 시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조 모임은 서로의 존재가 거울이 돼주는 공간이다. 누군가의 고백은 다른 이의 희망이 되고, 타인의 회복은 나의 내일을 밝힌다. 그들의 용기는 이미 충분하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 용기가 꺾이지 않도록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구민채·한지수·정세욱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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