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십일절·쓱데이까지
FOMO 속 마케팅 과열 경쟁
매년 11월, 유통가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11번가, 신세계, 무신사 등 주요 플랫폼이 일제히 대형 할인전을 열며 한 달 내내 쇼핑 열기가 이어진다. 미국 추수감사절 다음 날 하루만 열리던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가 한국에서는 11월 전체를 뒤덮는 ‘K-세일’ 축제로 확대된 셈이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는 제조업체가 재고를 대량 처분하는 ‘떨이 세일’에 가깝다. 전종우(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는 “미국 기업은 재고 보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파격 할인에 나선다”고 했다.
반면 한국의 11월은 본래 추석과 연말 사이에 낀 유통 비수기였으나, 해외 직구가 급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해외 직구 건수는 1억3363만 건을 기록하며 이미 전년도 연간 총량을 넘어섰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가 광군제를 맞아 성수동에서 연 팝업스토어에 오픈 첫날부터 800여 팀이 몰린 현상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확장된 해외 플랫폼의 공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소비자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나 중국 광군제 등 해외로 눈을 돌리자, 위기감을 느낀 국내 유통업계도 맞대응에 나섰다. 2008년 11번가가 ‘십일절’을, 2015년 정부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내세우며 11월 쇼핑 대전의 불씨를 당긴 것이다.
화려한 축제의 이면에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가장 큰 문제는 낮은 할인율이다. 전 교수는 “한국 유통업계는 기존 정기 세일의 간판만 ‘블랙프라이데이’라고 바꿔 단 경우가 많다”며 “미국처럼 반값 이하로 떨어지는 제품이 드물어 소비자 만족도가 낮다”고 지적했다. 죽전캠퍼스 재학생 A씨는 “80% 세일이라 광고했지만 실제로는 비인기 상품만 해당해 실망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11월 할인전이 길어지는 이유는 기업 간 FOMO(Fear Of Missing Out) 경쟁 때문이다. 전 교수는 “경쟁사가 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기업 차원의 불안감이 작동하면서 행사 기간이 끝없이 늘어난다”고 진단했다. 특히 교체 주기가 긴 가전제품이나 유행에 민감해 재고 부담이 큰 의류 업계에서 이러한 ‘동조 현상’이 두드러진다.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기업의 강박이 11월을 ‘피로한 쇼핑 전쟁터’로 만드는 것이다.
기업의 FOMO 경쟁은 결국 소비자의 FOMO를 다시 자극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쇼핑 앱들은 ‘마감 임박’, ‘선착순 쿠폰’ 같은 알림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소비자의 구매 본능을 자극한다. A씨는 “지금 안 사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결제하게 된다”며 “막상 받고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반품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허윤지(경제) 교수는 이를 행동경제학의 ‘손실 회피 성향’으로 설명했다. 허 교수는 “사람들은 5만 원의 이익보다 5만 원의 손실을 더 큰 고통으로 느낀다”며 “마케팅은 할인된 가격을 소비자가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준거점으로 설정해 소비자를 압박한다”고 분석했다. 즉, 소비자는 ‘50% 싸게 샀다’는 만족감보다 ‘지금 사지 않으면 50% 손해 본다’는 ‘프레이밍 효과’에 갇혀 객관적인 판단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 필요보다 손해를 피하려는 본능에 따른 결정이다.
할인 공세 속에서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허 교수는 “필수 지출을 뺀 예산을 정하고, 할인율보다 ‘나에게 가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1만 원의 충동구매도 그 돈으로 할 수 있었던 더 중요한 선택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숫자로 나열된 화려한 할인율보다 미래의 우선순위를 먼저 살피는 습관을 강조했다.
11월 쇼핑 시즌은 기업에겐 생존경쟁, 소비자에겐 합리성과 충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기다. ‘오늘만, 이 가격’이라는 유혹은 내일도 반복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빠른 결제가 아니라 잠시 멈춰 생각하는 한 번의 판단이다.
신동민·배정아 기자 dkdds@dankoo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