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수업 시간에 ‘대학생 때 해외 배낭여행 경험도 해보고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라’고 학생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사서 고생을 하더라도 견문을 넓히기 위해선 해외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에서다. 말 그대로 배낭 하나 메고 발바닥에 두꺼운 굳은살이 앉을 때까지 종일 걸어 다녔던 나의 대학 시절 배낭여행이 더없이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기에 꺼낸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한 이야기가 요즘 현실이나 대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무책임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1년 알바를 해 번 돈으로 비행기 티켓 한 장과 약간의 용돈만 마련하고 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해결이 됐던 고릿적 이야기를 한 셈이었으니, 뒤늦게 학생들에게 미안해진다. 식당에 앉아서 하는 식사는 하루 한 끼로만 제한하고 밤엔 기차역 노숙도 해보는 그런 여행은 이제 권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낯선 세계로 떠나는 매력적인 경험은 지구 위에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근래 TV든 유튜브든 세계여행을 테마로 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어 너도나도 비슷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또 즐겨 보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카메라에 담긴 작은 화면 안의 세계를 멀리서 구경하고 부러워하며 대리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여행의 경험을 ‘다시 태어남’, 즉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표현해 놓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18세기 후반 낭만주의 시기 이탈리아는 유럽인들의 오랜 꿈의 여행지였다. 물론 괴테 나이 서른 후반에 지친 심신을 치료하고 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떠난 여행은 마차를 끌어줄 이들과 물질적 여유가 뒷받침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물질적 풍족함도, 마부도 없는 젊은이들은 삶의 고달픔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딛고 어떻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대들에게는 세상 모든 이들이 가져봤으나 떠나보낸 젊음이 있고 그건 도전과 실패를 무릅쓸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여행은 단지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하고 SNS를 풍성하게 채워주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니다. 내 삶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충격을 동반하는 일이다. 자연과 인류의 오랜 유산 앞에서 숙연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하며, 좁디좁은 세상에서 다투고 뽐내며 아옹다옹하던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고된 한 학기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번 방학에는 괴테와 함께 내 젊은 날의 여행지를 꿈꾸고 계획해 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