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캠퍼스에 봄이 시작됐다. 설렘과 긴장을 품은 새내기들과 새 학기 각오를 다지는 재학생들의 모습에서 기분 좋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모든 출구는 또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다”라는 말처럼, 대학은 고교 시절의 출구인 동시에 진정한 사회로 나가기 전 마지막 입구이기도 하다. 이 교차점에서 우리는 한국 입시에 지쳐 다소 부정적 의미가 되었을지 모르는 공부 라는 단어의 본질을 되새겨봐야 한다.
우리는 흔히 ‘교육'과 ‘학습'을 혼용하지만, 두 단어를 한자로 풀어보면 큰 차이가 있다. 교육의 ‘교(敎)'는 매를 들고 아이를 이끄는 형상이며, ‘육(育)'은 아이를 보살피며 기르는 모습이다. 즉, 교육은 가르치는 자의 의지가 중심이 된 수동적인 ‘수용'의 과정이다. 학습의 ‘학(學)'은 아이가 두 손으로 책을 받들고 깨우치는 모습이고 ‘습(習)'은 ‘깃 우(羽)' 아래 ‘스스로 자(自)'가 합쳐져 어린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수천 번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교육이 밖에서 안으로 채우는 기름 부음이라면, 학습은 안에서 밖으로 터져 나오는 치열한 날갯짓이다. 20년 넘게 교육심리학을 연구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학자이자 선생으로서 강조하자면, 공부의 관건은 ‘학(배움)’이 아니라 반복적 활용을 통한 ‘습(익힘)’에 있다. 결국 꾸준한 실천이다. 우리가 젓가락질에 능숙해진 것도 끊임없는 반복 덕이다.
대학은 더 이상 교육 받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 고등학교까지의 공부가 정해진 정답을 수용 하는 교육 과정이었다면, 대학에서의 공부는 스스로 질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스스로 익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지식은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 낯선 바다에 가장 먼저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의 정신으로, 막 발을 담근 전공의 바다에서 질문의 주권을 차지하기를 바란다. 대학이 제공하는 모든 인프라를 활용해 마음껏 날갯짓 하길 바란다.
그동안 누군가 잘 차려준 교육의 밥상을 받기만 했다면 이제는 평생 학습자로서 자신의 로드맵을 직접 설계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이 삶의 표준이 된 AX(AI 대전환) 시대에는 어떤 환경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는 학습 문해력이야말로 우리를 지켜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