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3법’ 강행한 이재명 정부
권력의 균형·견제 작동 마비 우려
링컨의 겸손·포용 정치는 허상일까
“저 사람들은 미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야당인 민주당 의원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냈다. 워싱턴에서 진행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자리에서였다. 트럼프는 거침이 없었다. 자화자찬과 노골적인 편 가르기를 했다. 트럼프는 연설 직후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고함을 친 민주당 의원들은 정신병원에 보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권력은 일종의 게임이다. 쥐느냐, 놓치느냐를 놓고 사활을 건다. 정치 세계의 권력은 유혹적이다. 일단 잡으면 달콤하다. 정책을 바꾸고, 예산을 쥐락펴락하고, 인사권을 과시한다. 국정의 틀과 민심의 풍향계가 요동친다.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은 미로와 같다. 상대방을 속이고 제 편끼리도 땅따먹기한다. 도덕성과 염치는 허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말에 미국 집권 여당인 공화당 의원은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내 편만 옳고 상대편은 그르다는 ‘이분 정치’는 국민을 쪼갠다. 트럼프의 정치에서 통합과 포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글로벌 관세정책과 이란 전쟁은 안갯속이다. 글로벌 경제를 휘청이게 한 이란 공격은 미 의회 승인도 받지 않아 논란이다. 트럼프의 독주를 검증할 ‘레드팀’이나 쓴소리할 ‘악마의 대변인’이 내각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어로 정치가는 ‘키베르니테스(kybernetes)’다. ‘배의 키를 조정하고 항해한다’는 뜻이다. 배의 키를 잘 못 조정하면 배가 위험할 수 있다. 정치가가 국정의 키를 잘못 조정하면 국민이 위태할 수 있다. 참으로 신묘한 단어다. 그래서 리더십(leadership)이 중요하다. 리더십이라는 단어도 ‘선단을 이끄는 선두의 배’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리더가 어떤 비전과 계획, 어떤 능력과 경륜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조직의 명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리더십은 지금도 추앙된다. ‘시골뜨기’ 무명 변호사였던 링컨은 겸손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라이벌팀’을 만들었다. 자신보다 더 유명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경험이 풍부한 인물을 등용했다. 경선 라이벌이던 뉴욕주 상원의원 슈어드를 국무장관, 오하이오주 주지사 체이스를 재무장관, 미주리주의 유력 정치인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그리고 야당인 민주당 출신인 기디언 웰스를 해군장관, 몽고메리 블레어를 우정장관, 에드윈 스탠턴을 전쟁장관에 등용했다. 링컨은 “유능한 인재가 국가에 공헌할 기회를 내가 빼앗을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 중에서).
이재명 대통령도 담대한 실험을 했다. 20년 만에 부활한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에 이혜훈 국민의힘 전 의원을 지명했었다. 이념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통합·실용의 인사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후보자의 너저분한 흠결은 국민의 화를 돋웠다. 162석의 민주당, 범여권을 합치면 190석의 든든한 아군을 등 뒤에 둔 이 대통령의 링컨식 실험은 현재까지 더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권력은 막강하다. 거침없는 ‘입법 독주’가 거세다. 대통령도 속도전이다. 법왜곡죄, 재판소원제(4심제), 대법관 증원법, 전남·광주통합 특별법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특히 사법 3법은 삼권 분립의 원칙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분분한데도 말이다. 정권이 행정·입법·사법을 다 틀어쥐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정권 내부에서도 이런 우려가 나와야 건강한 메커니즘이다. 한데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당정과 범여권이 모두 이심전심이라면, ‘집단사고’와 ‘확증편향’ 위험성이 너무 크다. 권력은 어느 정도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내부 의 자극이 무디면, 외부의 촉이 더 날카로워야 한다. 바로 야당 역할이다. 한데 국민의힘은 지리멸렬이다. ‘자멸 정치’로 약한 힘마저 흩어졌다. 민주당에 쏠린 의회의 권력 추를 조금이나마 끌어당기려는 용렬한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즉 ‘키베르니테스’의 리더십은 그래서 중요하다.
미국의 조직행동학자인 제리 하비 교수는 “머리는 ‘노(No)’인데 입은 ‘예(Yes)’라고 하는 암묵적 동의는 구성원 모두에게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바로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다. 소신을 접고 권력 눈치만 보다가 집단사고에 동조하면 조직 전체가 마비된다는 의미다. 애빌린 패러독스를 지구상의 어떤 국가든, 어떤 정치세력이든, 어떤 조직이든 이 봄에 다시 소환해 해석하면 이쯤 될까.
“특정 조직이 마비되는 과정은 단순하다. 첫 번째 징후는 아무 생각 없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바보처럼 움직이는 조직, 두 번째 징후는 이류 인물이 등용되고 그 이하는 삼류로 채워져 구성원이 바보가 되려고 경쟁하는 조직, 세 번째 징후는 리더부터 신입까지 지성이 없는 혼수상태(coma)의 조직.”




